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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민 출신으로 1인자가 된 금강야차 이의민 어릴 때부터 힘이 세고, 불량한 행실을 일삼던 이의민은 안렴사(관찰사)에게 두 형과 같이 붙잡혀서 고문받다가 끝까지 버텼다는 이유로 군인이 되었습니다. 이후에는 의종(고려 18대 황제)이 그가 수박(맨손 격투기)을 잘하는 것을 보고는 별장(정7품의 벼슬)까지 승진시켜 주었습니다. 그러고는 문관들의 무관 차별 대우에 폭발하여 일어난 무신정변에 가담하여 제일 많은 사람을 죽였다는 이유로 장군(정4품)의 지위에 올랐으며, 의종을 시해한 뒤에는 대장군(종3품)으로, 조위총의 난을 진압한 뒤에는 상장군(정3품)까지 승진하였습니다. 이후 경대승(무신정권 3대 집권자)이 의종을 시해한 이의민을 경계하자 이의민은 두려움을 느껴 고향인 경주로 돌아갔다가 경대승이 죽고 나서야 4대 집권자가 되어 중앙 정계에 복귀했고, 1.. 2023. 6. 8.
노비 출신으로 동시대에 정반대의 길에서 활약한 정충신과 정명수 | 정충신 정충신은 노비 출신이었고 임진왜란 때 권율(당시 광주목사) 휘하에서 종군하여 활약했는데, 의주로 몽진해있던 선조에게 일본군 점령지를 우회해서 구사일생으로 이치전투의 승전보를 전달한 공로로 면천(노비에서 평민으로 신분이 높아짐)되었습니다. 이치전투에 대해서는 아래 게시물을 참고해주세요. https://historicalhistory.tistory.com/manage/posts?searchKeyword=%EC%9D%B4%EC%B9%98&searchType=title Tistory 좀 아는 블로거들의 유용한 이야기 www.tistory.com 그리고 이때부터 정충신은 이항복(권율의 사위)의 밑에서 학문을 닦아 무과에 급제하였습니다. * 참고로 노비는 과거에 응시할 수 없지만 평민부터는 과거에 응시할.. 2023. 6. 7.
발해유민 출신 거란군 vs 발해유민 출신 고려군 10세기 초, 거란족은 야율아보기의 지휘 아래 요나라를 건국한 뒤 발해를 멸망시켰고(926년), 이어서 정안국과 같은 발해부흥운동까지 제압하며 발해 유민을 요나라에 편입시켰습니다. 발해의 멸망에 대해서는 아래 게시물을 참고해주세요. https://historicalhistory.tistory.com/6 발해는 왜 멸망했을까? https://youtu.be/QtCcFjkpgXU 이번 시간에는 발해의 멸망과 그 이유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발해의 10대 왕인 선왕이 무너져가던 발해를 일으켜 세워 전성기를 이룩했고(해동성국) 11대 왕인 대이진과 1 historicalhistory.tistory.com 발해부흥운동에 대해서는 아래 게시물을 참고해주세요. https://historicalhistory.tisto.. 2023. 6. 6.
보덕국(고구려 부흥운동) vs 신라 황금서당(고구려인 부대) 668년에 나당연합군에 의해 고구려가 멸망하고 670년, 대형 지위에 있던 검모잠이 *안승을 왕으로 추대하고 고구려 부흥운동을 전개했습니다. * 안승 : 안승의 출신에 대해서는 연개소문의 동생인 연정토의 아들이라는 설과 고구려 마지막 태왕인 보장왕의 서자라는 설이 있습니다. 그들은 신라와 힘을 합쳐 옛수도인 평양성을 탈환하는 활약을 펼치기도 하지만 그들 사이에 내분이 일어나 안승이 검모잠을 죽이고 신라에 투항해버렸습니다. 그러자 674년, 문무왕(신라 30대 왕)은 안승을 *금마저에 정착시키고 보덕국 왕으로 임명하였습니다. * 금마저 : 현재의 전북 익산시로 추정되고 있으며, 백제가 멸망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백제 유민들을 고구려 유민으로 견제하고자 하는 의미에서 보덕국을 금마저에 위치시킨 것으.. 2023. 6. 5.
조선과 청나라 vs 러시아! 나선정벌 17세기, 모피 무역에 열을 올리던 러시아(당시 루스 차르국)는 동쪽으로 계속 진출했고, 아무르강(흑룡강) 일대에서 청나라와 충돌했습니다. 당시 청나라는 명나라(남명)를 상대하느라 러시아에 대적할 여력이 부족했고,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으로 굴복시킨 조선에 조총병 파병을 요구하였습니다. 이때 효종(조선 17대 왕)은 아버지(인조)가 삼전도에서 굴욕당한 치욕을 씻기 위해 북벌 준비에 한창이었기 때문에 양병 중이던 조총병의 실력을 평가할 목적으로 청나라의 요구에 응했습니다. 그래서 1654년, 변급을 지휘관으로 하여 152명의 조총병이 주축이 된 병력을 파견했고, 청나라군과 연합하여 단 1명의 사상자도 없이 혁혁한 전과를 세우고 돌아왔습니다. (1차 나선정벌) 하지만 조선군이 돌아간 뒤 청나라는 또 러시아군에 .. 2023. 6. 4.
미국과 프랑스 군대를 막아낸 조선이 일본에 굴복한 이유 1866년, 프랑스군은 흥선대원군의 천주교도 박해를 이유로(*병인박해) 1,500여 명의 병력을 이끌고 강화도를 공격하여 영종진과 갑곶진 일대를 점령했으나 정족산성에서 양헌수 장군이 이끄는 군대에 패하면서 철수하였습니다. (병인양요) * 병인박해 : 프랑스 선교사와 천주교도들을 탄압하여 8천여 명이 순교한 사건 그리고 1871년, 미군도 *제너럴셔먼호 사건과 강제 개항을 이유로 강화도를 공격했고, 초지진과 덕진진, 광성보까지 점령했으나 조선군이 격렬하게 저항하자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철수하였습니다. (신미양요) * 제너럴셔먼호 사건 :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가 평양에 와서 통상을 요구하며 백성을 살해하는 등 행패를 부리자 평안감사 박규수의 군대가 배를 불태고 선원들을 살해한 사건 그런데 1875년, 일.. 2023. 6. 3.
군인에게 1년 넘게 월급을 주지 않았을 때 벌어지는 일 19세기 말, 조선은 명성황후(민비)를 필두로 한 외척 세력이 정권을 잡고 있었고, 그들은 일본의 군사제도를 도입하여 신식군대인 별기군을 창설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와는 반대로 1년 넘게(13개월) 월급이 밀린 데다가 신식 군대와 차별을 받던 기존의 군대(구식군대)는 불만이 가득했습니다. 13개월 동안 체불한 것도 대단하고, 13개월이나 버틴 것도 대단하다 결국 이들은 *선혜청에서 겨우 한 달 치의 월급을 쌀로 받았으나 그마저도 모래와 쌀겨가 섞여 있어 구식군대가 이를 항의하며 관리를 구타하자 선혜청 당상 민겸호는 주동자를 체포하고 혹독하게 심문하였습니다. * 선혜청 : 대동법 시행으로 세금을 쌀ㆍ포 등으로 받기 위해 설립한 관청 거기다 옥에 갇혀있는 주동자들이 처형된다는 소식이 퍼지자 구식 군인들은 봉기.. 2023. 6. 2.
조선 최대의 금광이자 동양 최대의 금광! 운산금광 19세기 말, 조선은 이권을 차지하려는 일본, 러시아 등 여러 열강들의 틈바구니에 끼어있었습니다. 조선은 이 위기를 또 다른 열강인 미국을 끌어들여서 견제하고자 당시에 조선 최대의 금광이자 동양 최대의 금광이라 불리던 운산금광의 채굴권을 미국에 넘겨주었습니다. 미국인 모스(이후 헌트에게 넘김)가 조선 조정에 일시금 25만원과 매년 2만 5천원을 내는 대신, 단 한 푼의 세금도 내지 않는 조건으로 말입니다. 이를 두고 너무 터무니없는 값에 이권을 넘겨주었다고 지적할 수도 있지만, 당시의 조선은 금광석을 채굴한 뒤 가공할 기술과 자본이 매우 부족했기 때문에 어차피 큰 금광이 있어도 써먹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그렇게라도 하는 것이 차선책이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조선은 엄청난 이권을 미국에 넘겨주었지만 조.. 2023. 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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