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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 수군 도독 진린7

[임진왜란115] 노량해전(5) 한 명의 적도 놓쳐서는 안된다! 최고 지휘관인 이순신은 죽었지만, 아직 전투는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대장선에 타고 있던 이순신의 조카 이완은 이순신의 유언을 받아들여 자신이 이순신의 갑옷을 입고 북을 치며 전투를 진두지휘했으며, 이순신의 직속 부하였던 송희립은 분노하여 더욱 용감히 싸우다 총상을 입고 쓰러졌으나 다행히 전사하지는 않았습니다. 이외에도 잔적을 소탕하던 도중에 흥양현감 고득장, 낙안군수 방덕룡, 가리포첨사 이영남 등이 전사할 정도로 전투는 적이 완전히 물러갈 때까지 혼전의 연속이었고, 500척에 달했던 적선 중 정오 무렵, 조명연합군의 포위망을 간신히 뚫고 살아 돌아간 배는 50척에 불과했습니다. 칠천량해전, 남원성 전투, 사천왜성 전투를 모두 승리로 이끌었던 시마즈였으나 이순신에게는 당해내지 못했으며, 조명연합군은 노량해.. 2022. 9. 21.
[임진왜란114] 노량해전(4)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마라! | 적의 퇴로를 막아라 순천 왜교성의 고니시 유키나가를 구하기 위해 노량으로 들어선 시마즈 요시히로, 소오 요시토시, 다치바나 무네시게의 일본 수군 500척은 미리 매복해있던 조명연합 수군에게 잔뜩 두들겨맞은 후 육지로 막힌 포구인 관음포를 바다로 착각하고 사지로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고니시는 그 틈을 이용하여 여수 연안을 돌아 남해 방향으로 후퇴하였습니다. 이후 시마즈를 위시한 일본 함대는 상대적으로 전력이 약한 명나라 수군을 공격하여 활로를 열려고 했습니다. 이에 명군 선봉에 있던 부총병 등자룡이 탄 판옥선을 일본 전선이 에워쌌고, 등자룡은 포위된 상태에서도 열심히 싸웠지만, 결국 등자룡은 전사하고 판옥선은 불타버렸습니다. 곧이어 일본군은 명나라 수군 도독 진린의 판옥선에도 접근했으나 이순신의 조선 .. 2022. 9. 17.
[임진왜란113] 노량해전(3) 피로 물든 노량 해협 | 붉게 물든 노량 해협 명나라 수군 도독 진린의 묵인 하에 고니시의 연락선 1척이 사천의 시마즈 요시히로, 남해의 소오 요시토시, 고성의 다치바나 무네시게 등에게 고니시의 위급함과 함께 구원을 요청하는 서신을 보내면서 500척에 달하는 일본 수군이 창선도(경남 남해군 창선면 서대리)로 모여들었습니다. 이들은 고니시가 있는 순천까지 가장 최단 거리인 노량(경상남도 남해도와 하동 사이의 해협)을 통과해 고니시와 함께 조명연합 수군을 격멸하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를 미리 알고 있던 이순신은 적선이 노량을 빠져나오는 길목에 미리 매복해 있으면서 일본군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순신을 따르는 군사들도 그동안 온 국토를 유린한 적을 물리칠 복수심이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불타오르고 있었고, 적이 .. 2022. 9. 14.
[임진왜란111] 노량해전(1) 고니시의 뇌물 | 뇌물로 육군의 공격을 막자 1598년 9월 20일에서 10월 7일까지의 왜교성 전투로 조명연합군은 다수의 일본군과 전선을 격파했으나 아군의 피해도 적지 않았으며, 왜교성과 고니시의 목을 얻는 데 실패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순천 왜교성의 고니시 역시 성을 지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큰 피해를 입었고, 성 일대의 육로와 수로가 포위된 채 고립된 상황은 여전했습니다. 이에 고니시는 안전한 철수를 보장받기 위해 명나라 육군 제독 유정에게 또다시 뇌물을 주었고, 유정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당장 명나라 육군의 공격은 피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육로로 철수하기에는 유정의 서로군 외에도 중로군의 제독 동일원과 정기룡, 동로군의 제독 마귀와 김응서 등 수많은 조명연합군이 산재해 있었기 때문에 이들을 모두 뚫고 지나가기란.. 2022. 9. 7.
[임진왜란108] 순천 왜교성 전투(1) 사로병진책의 마지막 작전? 명나라 경략 형개의 사로병진 작전이 전개된 이후 조명연합군은 명나라 제독 마귀, 조선의 선거이와 김응서가 이끈(동로군) 2차 울산성 전투, 그리고 명나라 제독 동일원과 조선의 정기룡이 지휘한 사천왜성 전투(중로군)마저도 성을 함락시키지 못함으로써 전황은 조명연합군에 유리하게 전개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2차 울산성 전투에 대해서는 아래 게시물을 참고해주세요. https://historicalhistory.tistory.com/147 [임진왜란105] 임진왜란의 원흉! 가토의 목을 취하라! 제2차 울산성 전투 1597년 12월 23일에서 1598년 1월 4일까지 열흘에 걸친 1차 울산성 전투에서 명나라 경리 양호와 도원수 권율이 이끄는 조명연합군은 성의 수장이자 임진왜란의 원흉인 가토 기요마사의 목을 취하.. 2022. 8. 28.
[임진왜란101] 일본군의 기습을 역기습으로 대처한다! 절이도해전 1598년 7월 16일, 명나라 수군 도독 진린과 그 휘하의 5천 군사가 고금도에서 이순신의 조선 수군과 합류하였고, 7월 18일, 도도 다카토라와 가토 요시아키는 전함 100여 척을 이끌고 고금도 공격을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일본 수군의 움직임은 사방에 깔린 탐망선에 의해 곧바로 이순신에게 보고되었고, 조선 수군은 적선이 당도하기 전에 고금도와 거금도 사이에 위치한 금당도로 진격하였습니다. 이때 일본 수군이 고금도로 올 수 있는 경로는 소록도와 거금도 사이의 길목을 통과하는 방법, 그리고 거금도와 금당도 사이의 길목을 통과하는 2가지 길이 있었기 때문에 이순신은 함대를 이 2곳에 나누어 배치해 일본군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7월 19일 새벽, 도도 다카토라의 일본 함대가 거금도와 소록도 사이의 .. 2022. 8. 3.
[임진왜란100] 조선 수군의 새로운 전진기지 고금도, 그리고 명나라 수군 도독 진린의 합 | 새로운 진영 고금도, 그리고 해로통행첩 명량대첩의 승리 이후 고군산도까지 진영을 옮겼던 조선 수군은 1598년 2월 17일, 다시 남해 바다로 내려와 고금도(전남 완도군 고군면에 있는 섬)에 진영을 세웠습니다. 기적 같은 승리 소식을 듣고 흩어졌던 군사들과 함선이 다시 모여들었고, 이순신이 계속해서 수군 재건에 박차를 가한 결과 상당수의 군수품을 확보한 데 이어 80여 척에 달하는 판옥선을 보유함으로써 명량에서 승리했음에도 전투를 지속할 여력이 부족해 후퇴할 수밖에 없었던 때와는 달리 이제는 적의 침입에 밀리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생겼기 때문이었고, 임진년 때의 한산도처럼 이제는 고금도가 전진기지가 된 것이었습니다. 이때 이순신은 배를 이용하는 자에게 곡식 1~3섬을 받고 해로통행첩을 발행하여 바.. 2022. 7.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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