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세종대왕처럼 성군인 왕이 있는가 하면, 연산군처럼 폭군이거나 인조처럼 외교를 잘못하거나 잘못된 판단을 내려 나라를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해 백성들의 삶을 어렵게 했던 암군도 있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암군 중에서도 뛰어난 능력을 가진 아들이자 후계자를 질투한 사례에 다루어 보겠습니다.
선조의 아들들(정원군(인조의 아버지), 순화군, 임해군)은 백성들에게 온갖 행패를 일삼거나 걸핏하면 죽이는 등 망나니짓을 일삼았으나 광해군만큼은 임진왜란 때 *분조를 이끄는 동안 전장 한복판에서 일본군과 싸우는 백성들을 위무하며 차기 국왕으로써 해야 할 면모를 보여주었습니다.
* 분조 : 나라가 위급한 상황에 쳐했을 때 조정을 둘로 나누는 일
하지만 임진왜란 초반에 수도를 버리고 도망다니면서(한양-평양-의주) 권위가 실추되었던 선조는 이를 시기하여 세자인 광해군에게 양위(왕위를 넘김) 소동을 벌였고, 말년에는 늦둥이로 태어난 영창대군을 우대하여 광해군을 견제하려 했습니다.
광해군 : 왕위를 넘겨준다고 해서 넙죽 받을 수는 없고... 또 충성심 테스트인가
다음으로, 인조는 이괄의 난(공주로 피난), 정묘호란(강화도로 피난), 병자호란(남한산성으로 피난) 때 각각 한 번씩 몽진했고, 급기야는 오랑캐로 여겼던 청나라에게 직접 항복하는 삼전도의 굴욕까지 치르면서 왕권이 매우 추락했습니다.
그러나 그 아들인 소현세자는 청나라에 인질로 있는 동안 청나라 고관들과 접촉하며 외교 문제를 잘 해결했고, 부인인 민회빈 강씨와 함께 포로로 붙잡힌 백성들까지 되찾아오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그런데 인조는 9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소현세자를 지나치게 경계했고, 2달 후 소현세자는 숨을 거두었습니다.
* 소현세자 죽음의 원인에 대해서는 인조의 독살설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아들인 김일성과는 반대의 길을 걸었던 반공주의자 김형직에 대해 다루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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