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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아들을 질투한 암군들

by 역사채우기 2023. 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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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세종대왕처럼 성군인 왕이 있는가 하면, 연산군처럼 폭군이거나 인조처럼 외교를 잘못하거나 잘못된 판단을 내려 나라를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해 백성들의 삶을 어렵게 했던 암군도 있습니다.

세종대왕 동상

 

 

이번 시간에는 암군 중에서도 뛰어난 능력을 가진 아들이자 후계자를 질투한 사례에 다루어 보겠습니다.

 

 

선조의 아들들(정원군(인조의 아버지), 순화군, 임해군)은 백성들에게 온갖 행패를 일삼거나 걸핏하면 죽이는 등 망나니짓을 일삼았으나 광해군만큼은 임진왜란 때 *분조를 이끄는 동안 전장 한복판에서 일본군과 싸우는 백성들을 위무하며 차기 국왕으로써 해야 할 면모를 보여주었습니다.

* 분조 : 나라가 위급한 상황에 쳐했을 때 조정을 둘로 나누는 일

 

 

하지만 임진왜란 초반에 수도를 버리고 도망다니면서(한양-평양-의주) 권위가 실추되었던 선조는 이를 시기하여 세자인 광해군에게 양위(왕위를 넘김) 소동을 벌였고, 말년에는 늦둥이로 태어난 영창대군을 우대하여 광해군을 견제하려 했습니다.

광해군 : 왕위를 넘겨준다고 해서 넙죽 받을 수는 없고... 또 충성심 테스트인가

광해군과 영창대군의 가계도(출처 : 역사저널 그날)

 

 

 

다음으로, 인조이괄의 난(공주로 피난), 정묘호란(강화도로 피난), 병자호란(남한산성으로 피난) 때 각각 한 번씩 몽진했고, 급기야는 오랑캐로 여겼던 청나라에게 직접 항복하는 삼전도의 굴욕까지 치르면서 왕권이 매우 추락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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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전도의 굴욕(드라마 궁중잔혹사 꽃들의 전쟁 중에서)

 

 

그러나 그 아들인 소현세자는 청나라에 인질로 있는 동안 청나라 고관들과 접촉하며 외교 문제를 잘 해결했고, 부인인 민회빈 강씨와 함께 포로로 붙잡힌 백성들까지 되찾아오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그런데 인조는 9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소현세자를 지나치게 경계했고, 2달 후 소현세자는 숨을 거두었습니다.

* 소현세자 죽음의 원인에 대해서는 인조의 독살설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고국으로 돌아온 지 2달만에 죽은 소현세자(드라마 추노 중에서)

 

 

 

다음 시간에는 아들인 김일성과는 반대의 길을 걸었던 반공주의자 김형직에 대해 다루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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