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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좌수사 이순신11

[임진왜란65] 조선 수군 최초의 상륙작전! 웅포해전(2) 2월 10일부터 시작된 조선 수군의 4차례의 웅포 공격으로 5척의 적선을 격침시키고 다수의 일본군을 사살했으나 웅포에는 아직 훨씬 많은 수의 적선과 병력이 버티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이순신이 기다리던 조선 육군의 지원이 어렵게 되니 조선 수군이 독자적으로 웅포의 왜성과 포구에서 바다로 나올 생각이 없는 일본군을 상대해야 했습니다. 이에 이순신은 2월 22일, 임진왜란 최초로 상륙작전을 전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조선 수군이 보유하고 있던 성응지의 의병과 심혜, 의승이 이끄는 승병 1,700여 명을 동원하여 그중 1,100명을 남양리(안골포)에, 남은 600명을 제포(창원시 진해구 웅천동)에 각각 상륙시켰고, 경쾌선을 15척씩 조직하여 차례로 웅포로 진격한 후 공격하고 빠지길 반복하도록 하였습니다. 이는 3.. 2022. 1. 17.
[임진왜란64] 나오지 않는 적을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가? 웅포해전(1) 1593년 1월, 조명연합군의 제4차 평양성 전투로 평양성이 탈환되자 일본군의 기세가 꺾였다고 판단한 조선 조정은 전라좌수사 이순신에게 다시 한번 부산을 공격하여 일본군이 바다로 달아날 길을 차단하라는 명령을 하달하였습니다. 이순신은 명을 받들어 2월 2일에 42척을 이끌고 전라좌수영을 떠나 2월 7일에는 *견내량에서 경상우수사 원균의 전선 7척과 2월 8일에는 전라우수사 이억기의 전선 40척과 합류하였습니다. * 견내량 : 경상남도 거제시 사등면 덕호리와 통영시 용남면 장평리 사이의 좁은 해협 이렇게 다시 한번 연합함대를 구성한 조선 수군은 칠천도를 지나 부산으로 진격하려 했으나 날씨가 좋지 않아 날이 풀리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씁니다. 2월 10일, 조선 수군은 부산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웅포에 .. 2022. 1. 15.
[임진왜란62] 행주대첩(3) 계속되는 공격과 예상치 못한 변수 | 일본군 6진 모리 히데모토의 공격 조선군은 일본군 1진부터 5진까지의 계속된 공격을 잘 방어하였으나 쉴 틈도 없이 6진의 모리 히데모토가 출진하였습니다. * 1진 : 고니시 유키나가, 2진 : 이시다 미츠나리, 3진 : 구로다 나가마사, 4진 : 우키타 히데이에, 5진 : 깃카와 히로이에 모리 히데모토의 일본군은 처영이 이끄는 승병과 육박전을 전개하였는데 조선군은 계속된 전투로 점점 지쳐가는 상태였습니다. 반면에, 단병접전에는 도가 튼 일본군이었으나 승병들이 허리에 차고 있던 재 주머니를 얼굴에 뿌리자 앞을 볼 수가 없었고, 그사이에 목이 달아나 버렸습니다. 이 때문에 일본군은 공격이 지지부진해져 갈수록 피해가 늘어가고, 더 치고 나가지도 못하자 후퇴를 명하였습니다. | 일본군 7진 고바야카와 다카카.. 2022. 1. 10.
[임진왜란45] 적의 본진에서 벌어진 양측의 총력전! 부산포해전 | 부산포 해전 8월 29일에서 9월 1일 사이의 *6차례 해전에서 모두 승리를 거두며 부산포로 진입하기 전 적의 기선을 완전히 제압한 조선 수군은 *장사진을 펼쳐 부산진 포구로 진입하였습니다. * 장림포, 화준구미, 서평포, 다대포, 절영도, 초량목 해전 * 장사진 : 함대를 뱀처럼 길게 늘어세우는 진법 당시 부산포에 정박해 있던 적선은 무려 470여 척으로, 지금까지 이순신이 물리친 적선의 수를 모두 합친 것보다도 훨씬 큰 규모였습니다. 게다가 부산포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양자인 도요토미 히데카쓰, 한산도에서 무참피 패했으나 용인 전투에서는 1,600명으로 8만의 조선군을 패퇴시킨 와키자카 야스하루, 일본 센코쿠 시대에서 해전으로 이름을 날린 구키 요시타카, 그리고 도도 다카토라까지 쟁쟁한 인물들이.. 2021. 12. 6.
[임진왜란31] 부산 인근까지 다다른 조선 수군! 이순신의 3차 출정 성과 | 이순신의 3차 출정 성과 7월 6일에 다시 한번 연합함대를 결성하여 3차 출정에 나선 조선 수군은 7월 8일에 한산도에서, 7월 10일에 안골포에서 연이어 승리를 거두며 2번의 해전을 통해 적선 총 70여 척을 격침시키고, 12척을 나포하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이로써 조선 수군은 부산 인근까지 제해권을 넓혔고, 일본 수군은 가장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인 부산조차도 머지않아 공격받을 수 있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 공으로 전투를 총괄한 이순신은 정헌대부(정2품)으로, 전라우수사 이억기와 경상우수사 원균은 가의대부(종2품)으로 승진하였습니다. * 7척밖에 없던 원균에게 25척을 이끈 이억기와 같은 포상을 한 점은 아쉽습니다. | 와키자카 야스하루의 탈출 시도 한편, 한산도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2021. 11. 18.
[임진왜란30] 우수한 무기와 탁월한 전략! 안골포 해전 7월 8일, 전라좌수사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은 한산도 앞바다에서 일본 수군 장수 와키자카 야스하루가 이끄는 *73척의 함대를 물리치는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한산도 대첩) * 73척 중 47척 격침, 12척 나포, 14척은 퇴각 이는 지금까지 치렀던 해전보다 훨씬 더 큰 전과를 이룬 해전이었기에 장수와 병사들 모두 매우 기뻐했고, 승세를 타고 가덕도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날이 저물고 역풍도 크게 불어서 인근에 정박해 있었는데 승리의 여운이 채 지나기도 전에 *안골포에 적선이 있다는 보고를 받게 되었습니다. * 안골포 : 안쪽이 깊은 산골처럼 보인다는 뜻에서 안골포라 불리게 되었으며, 현재의 경남 창원시 진해구 청안동 이제 부산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일전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와키자카 야스하루.. 2021. 11. 17.
[임진왜란28] 한산도 대첩! 이보다 더 완벽할 순 없다! 한산도에 펼쳐진 학의 날개 https://youtu.be/htWDDIt-qD8 | 한산도 대첩 7월 8일, 조선 수군은 5~6척의 판옥선이 *견내량으로 진격하여 정박해있던 일본 수군을 향해 화포를 발사했습니다. * 견내량 : 경남 거제시 사등면 덕호리와 경남 통영시 용남면 장평리 사이의 해협 소수의 전선으로 피해를 줌으로써 일본군을 자극하기엔 충분했고, 전공을 세울 욕심에 들떠있던 와키자카는 큰 의심 없이 미끼를 물어 조선 수군을 향해 빠른 속도로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의 함대는 첨저선이었으므로 평저선인 조선의 판옥선에 비해 속도가 매우 빨랐기 때문에 퇴각하는 판옥선에 빈틈을 주지 않고 따라붙은 후 조총을 쏘며 싸움을 걸었습니다. * 첨저선은 선체의 바닥이 뾰족한 선박으로 저항을 적게 받아 속력이 빠르나 선회하기 어렵고, 화.. 2021. 11. 13.
[임진왜란27] 제해권을 장악하라! 이순신의 3차 출정 | 진군에 제동이 걸린 일본군 1592년 6월, 일본 제6군 고바야카와 다카카게의 군대가 전라도를 공격하면서 이치, 웅치, 안덕원 등지에서 치열한 혈전이 펼쳐질 무렵 전라좌수사 이순신이 지휘하고 있는 남쪽 바다에서도 전란의 흐름을 바꿀 기류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이순신과 조선 수군은 그동안 옥포에서의 승리를 시작으로 합포ㆍ적진포ㆍ사천ㆍ당포ㆍ당항포ㆍ율포에서 적선을 일방적으로 격침시키며 남해의 제해권을 넓혀나가고 있었습니다. 이에 일본 수군은 서해로 진출하지 못했기 때문에 평안도로 진군해있는 일본 제1군 고니시 유키나가의 군대는 제때 보급을 받지 못하고 있었고, 명나라 군대가 참전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조선의 최후방어선이자 선조가 있는 의주를 목전에 두고도 더는 진군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 조선 수군의.. 2021. 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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