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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고구려의 역사13

보덕국(고구려 부흥운동) vs 신라 황금서당(고구려인 부대) 668년에 나당연합군에 의해 고구려가 멸망하고 670년, 대형 지위에 있던 검모잠이 *안승을 왕으로 추대하고 고구려 부흥운동을 전개했습니다. * 안승 : 안승의 출신에 대해서는 연개소문의 동생인 연정토의 아들이라는 설과 고구려 마지막 태왕인 보장왕의 서자라는 설이 있습니다. 그들은 신라와 힘을 합쳐 옛수도인 평양성을 탈환하는 활약을 펼치기도 하지만 그들 사이에 내분이 일어나 안승이 검모잠을 죽이고 신라에 투항해버렸습니다. 그러자 674년, 문무왕(신라 30대 왕)은 안승을 *금마저에 정착시키고 보덕국 왕으로 임명하였습니다. * 금마저 : 현재의 전북 익산시로 추정되고 있으며, 백제가 멸망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백제 유민들을 고구려 유민으로 견제하고자 하는 의미에서 보덕국을 금마저에 위치시킨 것으.. 2023. 6. 5.
일본에서 1300년 넘게 고구려 왕족을 기리고 있는 신사 666년, 고구려 왕족 약광은 일본 야마토 정권에 사신으로 갔다가 2년 뒤에 고구려가 멸망하면서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고구려의 멸망에 대해서는 아래 게시물을 참고해주세요. https://historicalhistory.tistory.com/11 고구려의 멸망 https://youtu.be/eyIphWEUjWM 이번 시간에는 고구려의 멸망에 대해 설명해드리겠습니다. | 제2차 고당전쟁 661년 봄, 당나라가 고구려를 공격하기 위해 하남ㆍ하북ㆍ회남 지방의 67개 주에서 4만 4천여 명 historicalhistory.tistory.com 이후 약광은 일본에서 코마(高麗=고려) 씨를 받고 무사시 지역(현 사이타마 현과 도쿄 일대)에서 고구려 유민 ,799명을 이끌게 되었으며, 그가 죽은 뒤에는 약광을.. 2023. 5. 28.
고구려 유민 출신으로 타국에서 출세한 인물들 | 고선지 고선지는 고구려 장군 고사계의 아들로 파미르 고원을 넘어 서역의 72개국을 정벌하며 중앙아시아까지 진출하였으나 *탈라스 전투에서 이슬람 군대에 대패했고, *안사의 난 때 부원수로 임명되어 반란군과 대치하던 중 변영성의 모함으로 참수되었습니다. * 탈라스 전투 : 751년, 당나라와 아바스 왕조 및 카를룩 사이에서 벌어진 전투로, 이 전투에서 끌려간 당나라 포로들이 제지술(종이 제조법)을 알려주어 전세계로 제지술이 전파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안사의 난 : 755~763년까지 이어진 안녹산과 사사명의 난의 줄임말로 당나라의 국력이 약화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왕사례 고구려가 멸망하고 영주 지방으로 이주한 왕사례는 당나라의 장군이 되었다가 안사의 난이 일어나자 가서한, 곽자의 등의 명장과 .. 2023. 5. 23.
조국을 배신한 형제들의 난1 연남생(연개소문의 장남) vs 연남건 연남산(연개소문의 차남과 삼남) 연개소문이 죽자 연남생이 대막리지 직을 이어받았으나 연남생이 순시를 나갔을 때 어떤 사람이 연남생과 그 형제들을 이간질했고, 처음에는 이를 믿지 않았지만 계속된 이간질에 연남생은 이에 속아서 동생들을 의심하여 첩자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그 첩자는 남건과 남산 형제에게 붙잡히고 말았고, 이에 분노한 남건과 남산 형제는 정변을 일으켜 연남생의 집을 습격했고, 연남생의 아들이자 그들의 조카인 연헌충을 죽인 뒤 왕명을 사칭하여 남생에게 도읍인 평양으로 돌아오도록 지시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들의 죽음을 전해들은 연남생은 돌아가면 죽음뿐이라는 것을 깨닫고 국내성 일대에서 자신을 이끄는 군사들과 함께 내전을 일으켰으나 연이어 패하면서 뒤로 몰리고 있.. 2023. 5. 20.
고구려와 백제 멸망의 단초를 제공한 백제의 인물 고구려의 대막리지 연개소문이 죽자 고구려는 장남인 연남생이 대막리지를 이었으나 그 동생들(연남건, 연남산)과의 내분으로 연남생이 밀려났고, 연남생은 그 길로 당나라로 투항하였습니다. 조국을 배신한 연남생은 당나라의 앞잡이가 되어 고구려 멸망에 앞장섰고, 고구려는 나당연합군의 공격을 받아 평양성이 함락되면서 멸망하였습니다. (668년) 고구려 멸망의 직접적인 원인은 위와 같지만, 그 이전에 고구려와 협력하여 피해를 경감시켜주었던 동맹국 돌궐과 백제가 차례로 멸망한 것도 고구려에 큰 부담으로 다가왔는데요. 백제는 나당연합군의 침입으로 수도인 사비성이 무너지자 의자왕은 옛 수도였던 웅진성으로 몽진하여 계속 저항하고자 했으나 웅진성주(웅진방령) 예식진이 의자왕을 당나라에 갖다바치면서 백제는 멸망하였습니다. (6.. 2023. 1. 16.
우리나라 최초의 복지제도 우리 조상들은 한 해 농사가 잘 되기를 기원했고, 왕도 같은 마음으로 하늘에 제사를 지냈습니다.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 동예의 무천과 같은 제천행사를 그 예로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홍수와 가뭄, 메뚜기 떼 등으로 인해 흉년이 들어 식량이 부족해지면 일반 백성들은 귀족들에게 무거운 이자를 감수하고 식량을 빌려 생활하곤 했습니다. 농민 : 이자가 비싸도 굶어 죽지 않으려면 당장은 먹고 살아야지! 그런데 흉년이 겹쳐서 빌린 식량을 제때 갚지 못하면 농민들은 땅을 팔았고, 그조차도 없는 농민들은 노비가 되어 비참한 삶을 살아야 했는데요. 이런 상황이 계속될수록 귀족의 힘은 점점 강해지고, 반대로 나라에서는 세금을 낼 농민들이 부족해져서 국고를 충당하기 어려웠고 왕권도 같이 약화되었습니다. 이러한 때에.. 2023. 1. 6.
광개토태왕, 동북아에 고구려의 천하관을 성립하다! 이번 시간에는 저번 시간에 이어서 광개토태왕의 정복전쟁에 대해 다루겠습니다. | 고구려 신라 vs 백제 가야 왜 앞서 아신왕(백제 17대 왕)은 396년에 고구려 광개토태왕에 패한 후 항복하였으나 속으로는 절치부심하며 뒷일을 도모하고 있었습니다. 아신왕은 백제군 단독으로 고구려를 상대하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하여 가야와 왜국을 끌어들였고, 고구려 대신 고구려와 밀접한 관계에 있던 신라를 공격하였습니다. 그러자 내물왕(신라의 17대 왕)은 세 나라의 침입으로 자칫하면 나라가 멸망할 위기에 봉착하자 고구려에 사신을 보내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이에 광개토태왕은 400년, 보병과 기병 5만 대군을 신라로 보내 왜군을 무찌르고, 가야 연맹을 이끌던 금관가야까지 공격하니 금관가야는 세력을 잃고 겨우 명맥만 유지한 .. 2021. 9. 22.
광개토태왕, 고구려의 전성기를 열다! https://youtu.be/vdYGOYbZYlg 이번 시간에는 고구려의 전성시대를 이끈 광개토태왕의 일대기에 대해 알려드리겠습니다. | 광개토태왕 즉위 이전 고구려의 상황 고구려는 16대 왕이었던 고국원왕 시기 서쪽으로는 모용황(중국 오호십육국 시기 모용선비가 세운 전연의 1대 왕)이 이끄는 전연의 군대에 대패하여 15대 왕 미천왕의 시신과 태후 주씨(고국원왕의 어머니), 그리고 5만 명의 포로까지 잡혀가는 수모를 겪었으며, 남쪽으로는 전성기를 맞아 무서운 기세로 진출해오는 근초고왕의 백제군과 맞서다 평양성 전투에서 고국원왕이 화살에 맞아 전사하는 시련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고국원왕의 뒤를 이어 즉위한 소수림왕(고구려 17대 왕) 시기에도 위기는 지속되어 거란족의 침입으로 8개 부락이 약탈당하고, 1.. 2021. 9.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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