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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대량살상무기! 화차

by 역사채우기 2021. 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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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d3QZ46JNqqg

 

이번 시간에는 조선의 대량살상무기 '화차'에 대해 설명해드리겠습니다.


1377년, 최무선의 화약 개발을 시작으로 화통도감(화약 및 화기 제조를 담당하던 관청)이 설치되어 대장군포, 화포 등의 총포류와 철령전, 피령전과 같은 발사용 화기가 개발되었고, 이는 왜구의 침입을 막는데 상당한 위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최무선의 화약 개발에 대해서는 아래 게시물을 참고해주세요.
https://historicalhistory.tistory.com/30

 

최무선, 화약의 개발로 위기에 처한 고려를 구하다!

https://youtu.be/moNcYHptkes | 고려 말 왜구의 발호 최무선이 활동할 당시, 북쪽에서는 홍건적(백련교도가 중심이 되어 봉기한 한족 농민 반란군)이 쳐들어왔고, 남쪽에서는 왜구가 고려의 해안을 침범

historicalhistory.tistory.com

 

 

| 최해산 화차

하지만 1388년에 화통도감이 폐지되었지만, 화약 무기의 개발은 계속되었고, 조선시대에 이르러 1409년, 최무선의 아들 최해산이 연구를 거듭한 끝에 화차를 만들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철령전 수십 발을 여러 동통(청동으로 만든 총통)에 넣은 후 작은 수레에 실어
화약으로 발사하면 맹렬하여 적을 제어할 수 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최무선의 아들 최해산(드라마 대왕세종 중에서)



| 문종 화차

이후 1451년에는 당시 왕이었던 문종(조선 5대 임금)이 직접 이전의 화차를 개량하여 문종화차를 만들었습니다.
이는 문종이 군사 부문에 관심이 많았고, 화약 무기 개발에 열중하고 있었기에 나타난 결과물이었습니다.

문종화차는 4전총통(화살 4개용 총통) 50문을 탑재하여 한 번에 200발의 화살을 발사하거나 화살 대신 소신기전이나 중신기전을 꽂아서 발사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문종화차의 소리와 화력이 대단하여 적의 침입을 막는 데 효과가 있다고 여겨져 700대 이상을 제작하여 전국의 중요 요충지에 배치했고, 실제로도 적에게 발사했을 때 상당한 타격을 줄 수 있었으며 맞추지 못할 때도 적들이 혼비백산하여 도망치기 급급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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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화차인 문종화차 사진


| 주차총통화차

1490년에는 문종화차의 4전총통 대신 주자총통을 설치한 후 피령전(가죽 날개를 붙인 화살)이나 화전 등을 발사할 수 있는 화차가 개발되었습니다.

주자총통화차(총통기) 사진


| 변이중 화차

시간이 흘러 1592년, 임진왜란 때는 도체찰사 류성룡이 승자총통 15문을 탑재한 화차를 개발한 데 이어 변이중이 수레 위에 40문의 승자총통을 탑재한 화차를 개발하였습니다.

도체찰사 : 전시에 정1품 정승이 맡은 각 도의 군권과 행정권을 총괄하는 임시 관직


변이중이 개발한 화차는 다른 화차와 달리 3면에서 적을 향해 공격할 수 있었고, 4면으로 방호벽이 설치되어있어 총통수를 보호할 수 있었으며, 방호벽에는 구멍을 뚫었기 때문에 총통수가 화차 안에서 밖을 보면서 공격할 수 있었습니다.

변이중 화차(드라마 징비록 중에서)


이때 개발된 화차는 박진이 경주성을 탈환할 때와 권율행주대첩에서 승리할 때 상당한 효과를 발휘하였습니다.
이후 1674년에는 허적이 이 화차에 승자총 대신 조총 50정을 설치하여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조총 이미지


무기는 설사 백 년 동안 쓸 일이 없다 해도, 단 하루도 갖추지 않을 수 없다.
- 정약용의 [목민심서] 중에서

 

 

다음 시간에는 조선의 비행기 '비차'에 대해 알려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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