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시간에는 조선의 비행기 '비차'에 대해 알려드리겠습니다.
때는 조선시대로, 전북 김제 출신의 정평구는 문과에 응시하였으나 낙방하자, 무과로 전환하여 응시한 뒤 합격하여 무관으로 관직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정평구는 전라우수사 이억기(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과 함께 활약한 수군 장수)에게 발탁되어 진주병영 별군관으로 근무하였고,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진주목사 김시민의 휘하에서 화약을 다루는 일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진주성 전투 때 비차(바람을 타고 비행할 수 있는 수레)를 만들어 고립된 진주성과 외부 사이에 연락을 취해 식량을 나르는 데 사용하였고, 신경준의 [여암전서]에는 왜군에게 포위되어 영남의 성에 갇혀 있던 성주를 비차에 태우고 10m 높이로 이륙한 뒤 30리 밖으로 탈출시켰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의 역사서인 [왜사기]에는 비거(비차) 때문에 왜군이 작전을 전개하는 데 큰 곤욕을 치렀으며,
비차는 2 km 높이에 뜨고, 한 번에 무려 30~50리(12~20km)를 날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비차로 큰 활약을 펼친 정평구는 선조(조선 14대 왕)에게 "제게 이 위급한 국난(임진왜란)을 맡겨 준다면 3개월 안에 평정시킬 것을 맹세합니다"라는 상소문을 올렸고, 비차의 활약을 본 사람들 역시 상소문을 올려 정평구의 공을 치하하려 했으나 안타깝게도 선조와 조정 대신들은 이 상소의 내용을 헛소문으로 믿었기 때문에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선조와 조정 대신 : 하늘을 나는 기구가 있을 리 없지
그래서 결국 비차에 대해서 조선왕조실록과 같은 역사서에 공식적인 기록이 남지 못했고, 설계도가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비차가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비차의 작동원리와 기능에 대해 아래와 같이 설명되어 있습니다.
우선 수레에 연처럼 깃과 날개를 달고 동체에 있는 가죽 주머니 아래쪽에 뚫려있는 구멍을 열어 압축 공기를 아래로 분출시키면 그에 따른 반작용과 함께 공기방석작용으로 이륙하는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 후 비차에 탄 4명이 날개를 움직이는 줄과 연결된 기계장치를 움직여 양쪽 날개를 상하로 움직이면 비차가 공중으로 떠오르면서 앞으로 나가게 됩니다.
이렇게 떠오른 비차는 기세가 대단히 거세어 공중에서 약 100장(200m) 정도까지 비행할 수 있었으며, 상승기류를 타게 된다면 30리(약 12km)의 거리도 날아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후 시간이 흘러 1903년에 미국에서 라이트 형제가 동력 비행기를 만들었고(플라이어 1호), 그것을 기점으로 항공산업이 발전을 거듭하면서 오늘날의 비행기에 이르게 되었으니 비차가 명맥이 끊어져 더이상 발전하지 못한 것이 너무나도 안타깝게 다가옵니다.
조선 사람들도 능히 만들 수 있다
다만 세상에 전하지 못하였을 뿐이다
현재 남이 제작하는 것을 우리나라에서 못 만드는 것은
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구제하려는 뜻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 이규경 [오주연문장전산고]
다음 시간에는 조선 최고의 돌격전함 '거북선'에 대해 알려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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