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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고의 돌격전함! 거북선

by 역사채우기 2021. 9.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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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4bkZUX0zezw

이번 시간에는 조선 최고의 돌격전함인 거북선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 태종 시기 첫 거북선

거북선은 조선 초기 1415년(태종 15년), [조선왕조실록]에 처음 등장합니다.
당시에는 고려 말부터 이어진 왜구의 침입이 적극적인 토벌 작전으로 한층 기세가 꺾이긴 했으나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었으므로 조선 수군의 전력 강화와 왜구의 침략을 근절하기 위한 일환으로 거북선을 건조한 것으로 보입니다.

 

고려 말 왜구의 침입에 대해서는 아래 게시물을 참고해주세요!

https://historicalhistory.tistory.com/30

 

최무선, 화약의 개발로 위기에 처한 고려를 구하다!

https://youtu.be/moNcYHptkes | 고려 말 왜구의 발호 최무선이 활동할 당시, 북쪽에서는 홍건적(백련교도가 중심이 되어 봉기한 한족 농민 반란군)이 쳐들어왔고, 남쪽에서는 왜구가 고려의 해안을 침범

historicalhistory.tistory.com

하지만 이때의 거북선은 어떠한 형태로 존재했는지는 알 수 없고, 기록으로만 전해지고 있습니다.

 

| 이순신의 거북선

그 이후로 거북선이 잊혀지다가 1591년, 이순신 장군이 류성룡의 추천으로 전라좌도수군절도사(전라좌수사)에 임명되면서 다시 기록에 등장하게 됩니다.
이순신 장군은 부임하자마자 머지않아 외적의 침입이 있을 것이라 예상하여 전력 강화와 군비를 확충하는데 온 힘을 쏟았습니다.

이순신 장군 영정

그런데 이순신 장군은 한 가지 고민에 빠졌습니다.
왜구가 침략한다면 조선수군은 화포로 무장되어있었기 때문에 왜선이 접근하기 전에 큰 타격을 줄 수 있었지만 포를 장전하는 시간이 길었고, 그 틈을 노려 빠른 속도를 자랑하는 왜선이 아군의 배에 접근하여 근접전 양상이 벌어지게 되면 순식간에 전세가 역전되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당시 일본은 전국시대를 거치며 전투 경험이 쌓인 군사들을 다수 보유하고 있었고, 특히 근접전에서 막강한 힘을 발휘했기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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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른 속도를 자랑하는 일본의 주력선 세키부네와 안택선(아타케부네)(영화 명량 중에서)


이 시기 조선수군은 주력선으로 판옥선을 보유하고 있었고, 왜구들의 도선을 막기 위해 한 층 높여 만들어졌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왜구의 도선을 막아 포수들이 적에게 위협받지 않고 사격할 수 있는 돌격선!

 

이순신 장군은 이를 승리로 이끌어줄 비장의 무기로 생각한 것이었습니다.
이순신과 나대용을 비롯한 장수들은 전함 개발에 몰두하면서 태종 시기에 만들어졌던 거북선에 대해 알게 되었고, 이를 참조하여 새로운 거북선을 만들게 됩니다.

 


| 거북선의 구조와 특징

우선 거북선의 앞부분은 용머리를 부착해 대포를 쏘는 동시에 유황을 태워 연기를 내뿜었고, 아랫부분에는 충각전술을 위해 돌기를 설치하였으며 등에는 쇠못을 꽂아 적이 배에 오르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 당포파왜병장(사천해전과 당포해전 승리 후 보고한 장계) 중에서


또한, 판옥선이 원거리에서 포물선을 그리며 곡사포를 쏘는 반면, 거북선은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서 직선으로 포를 쏠 수 있다는 것이 기존의 배와 차이점이었으며 전후좌우로 포문을 만들고 천자포, 지자포, 현자포, 황자포와 같은 총통을 탑재하여 사방으로 공격할 수 있었습니다.

판옥선 이미지

이렇게 만들어진 거북선은 조총을 맞아도 선체가 뚫리지 않았기 때문에 적진 깊숙이 파고들 수 있었고, 그 후에는 적의 진영 사이를 종횡무진으로 누비면서 대포를 쏘아 진영을 흐트러뜨리는 역할을 주로 수행했습니다.

1592년 3월 27일, 이순신 장군은 거북선을 전라좌수영 앞바다에 띄웠고, 이 무렵 일본은 태합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국을 통일시킨 후 조선을 침략하기 위한 준비를 거의 마친 상태였으며, 장수들에게 출전 명령을 내리는 공문을 보냈습니다.

임진왜란의 주범 도요토미 히데요시

이후 4월 12일에는 거북선에 화포를 탑재한 뒤 바다에서 직접 발사하여 실전에 앞선 시험을 완료하고, 이순신 장군 역시 전쟁의 모든 준비를 끝마쳤습니다.


그리고 거북선은 임진왜란 때 사천해전(이순신 장군의 4번째 해전)에서 처음으로 출전하며 시작을 알렸고,
원균의 칠천량해전에서 침몰당하기 전까지 주요 해전에서 조선수군 돌격선으로써의 위용을 뽐내게 됩니다.
그리고 거북선의 시험을 마친 다음 날, 일본 제1군 선봉장 고니시 유키나가가 700척의 전함을 이끌고 조선에 상륙하면서 임진왜란이 발발하였습니다.

공교롭게도 거북선의 시험을 마친 다음날 임진왜란이 발발했습니다(드라마 징비록 중에서)

 

 

다음 시간에는 발해가 우리나라 역사인 이유에 대해 알려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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