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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4] 김해성 전투와 임진왜란 최초의 의병

by 역사채우기 2021. 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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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wyHFiJNSUew

 

 

고니시 유키나가가 이끄는 일본 제1군이 부산의 여러 성을 함락하고 북진하고 있을 무렵 가토 기요마사가 이끄는 2군, 구로다 나가마사가 이끄는 3군도 부산에 각각 상륙하였습니다.

 

 


| 김해성 전투

그 중 구로다 나가마사의 1만 3천 병력은 김해성으로 향했습니다.

김해읍성의 사진

 


김해성을 지키는 김해부사 서예원과 초계군수 이유검은 불과 1천여 명의 병력으로 4월 17일부터 시작된 일본군의 공격을 3차례나 막았으나 점점 패색이 짙어지자 백성들을 버리고 각자 살길을 찾아 도망쳤습니다.


지휘관이 도망치자 남은 군민들은 사기가 떨어졌으나 그 자리를 송빈, 김득기, 이대형, 류식 등이 각각 의병을 이끌고 끝까지 전투를 지휘하다 모두 장렬히 전사하면서 성이 함락되었습니다.

 


이들은 임진왜란 때 일어난 최초의 의병장들이었으며 절대적인 병력의 열세 속에서 4일이나 버틴 후 마지막까지 나라에 충절을 지켰다는 점에 있어서 높이 평가받아야 합니다.


이후 일본 제1군은 부산-양산-대구를 거쳐 상주로, 2군은 부산-울산-경주-군위를 거쳐 예천으로, 3군은 김해-성주-김천 방향으로 진군하고 있었습니다.

일본군의 진격로

 


한편, 4월 17일 아침, 조선 조정은 예상하던 대로 일본군이 침입했으며, 부산진성과 다대포성, 그리고 동래성마저 함락되었다는 경상좌수사 박홍의 급보를 받고는 상황의 심각성을 파악하여 이일순변사로 임명한 후 대구로 보냈고, 신립을 삼도 순변사로 임명한 후 충주로 보내 적을 막아낼 것을 명령합니다.

 

* 순변사 : 변방의 군사와 정무를 돌아보기 위해 임금의 명으로 파견된 특사

 



| 이일은 누구인가?

이일신립과 함께 북방에서 니탕개의 난을 진압하여 혁혁한 공을 세운 공을 인정받아 함경도 북병사로 근무했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니탕개의 난 : 1583년, 니탕개를 중심으로 한 여진족이 3만 군대를 이끌고 함경도를 침입한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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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제승방략체제를 보완하여 조선이 기존에 채택했던 방어 체제를 진관체제에서 제승방략체제로 전환하게 했던 인물이었습니다.

 


여기서 진관체제란 적이 침입하면 공격을 받은 최전방에 주둔한 군사들이 각각 자신의 진을 수성하는데 전력을 다하게 하는 제도이지만, 적이 대규모로 침입했을 때 각개격파 당하기 쉬운 단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승방략체제는 이 점을 보완하여 전시에 여러 진의 군사를 한곳에 집결시킨 후 중앙에서 파견된 장군을 보내 통일된 지휘를 받게 하는 제도였습니다.

진관체제에서 제승방략체제로 전환시킨 이일

 

 

 

그렇게 당대를 대표하는 명장인 이일신립은 과연 일본군을 맞아 승리할 수 있을까요?

 

다음 시간에 [임진왜란5] 상주 전투에 대해 다루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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