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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1차 여진정벌

by 역사채우기 2021. 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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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간에는 고려의 1차 여진정벌에 대해 설명해드리겠습니다.

 

https://youtu.be/lefc3hyg-FM

 


거란의 1ㆍ2ㆍ3차 침입을 성공적으로 막아낸 고려는 주변 국가들로부터 얕볼 수 없는 나라로 인식되었고, 현종 시기부터 100년이 넘는 전성기를 구가하는 중이었습니다.

 

거란의 침입에 대해서는 아래 링크를 참고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https://historicalhistory.tistory.com/16

 

고려와 거란의 3차 전쟁, 귀주대첩

https://youtu.be/2Ngd-h8D5kE 이번 시간에는 거란의 3차 침입과 귀주대첩에 대해 설명해드리겠습니다. 고려는 993년의 거란의 1차 침입과 1010년의 2차 침입을 연이어 막아내었고, 2차 침입 때 거란군의 회

historicalhistory.tistory.com

 

 


| 여진족은 누구인가

이 당시의 여진족은 삼국시대에는 말갈족으로 불리며 고구려에 복속되었다가 발해가 세워진 뒤에는 발해가 세력을 확장하면서 발해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발해가 거란에 의해 멸망하면서 말갈족의 일부는 거란 또는 고려에 흡수되었고 나머지 대부분의 말갈족은 독립적인 세력을 형성하며 여진족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중 친고려 성향을 보이는 여진족들은 고려에 말을 바치고 농기구를 바꿔가며 고려를 부모의 나라로 섬겼으나 시간이 흘러 숙종(고려의 15대 왕) 시기에는 여진족의 일부인 완안부가 힘을 길러 추장인 영가와 오아속이 고려의 천리장성(1044년에 축조된 압록강에서 도련포까지 이르는 성) 부근까지 세력을 확장하면서 고려와 마찰을 빚게 되었고, 여진족 내부에서도 친고려파반고려파가 나뉘게 되었습니다.

파란색으로 표시된 부분이 천리장성(출처 : 위키백과)

 

 


| 고려의 1차 여진정벌

때는 1102년, 완안부의 여진족이 부내로의 여진족을 공격한 뒤 추격하다가 고려의 정주성 근처에까지 와서 진을 치자, 공격해올 것을 의심한 고려군은 그 부족의 추장인 허정과 나불 등을 유인한 뒤 체포하여 심문하였습니다.


그들은 고려를 공격하려고 했던 행위로 자백하였고, 이 일을 알게 된 고려 조정은 문하시랑평장사 임간에게 군사를 주어 여진족을 수비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임간은 전공에 눈이 멀어 수비지역을 벗어나 적진 깊숙이 진격하다가 여진족의 기습에 크게 패하여 대부분의 군사를 잃고 말았고, 여진족은 정주에 침입하여 인근을 노략질하였습니다.

 


그러자 숙종윤관을 동북면행영도통으로 임명하여 여진족을 공격하게 하였는데 적군은 30여 명이 죽은 데 반해 고려군은 이끌고 간 군사의 절반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하였습니다.

윤관의 동상

 


이에 숙종은 천지신명에게, 만약 도움을 내려 적지를 소탕하게 해준다면 그 땅에 사원을 짓겠다고 빌 정도로 여진정벌은 숙종에게 있어 숙원이었습니다.

 

 


| 별무반 창설

그래도 이 전투로 인해 여진족의 강성함과 고려군의 약점을 깨달은 윤관은 패배의 원인이 적의 주력은 기병인데 우리의 주력은 보병이니 보병으로 기병을 상대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고 왕에게 보고하였습니다.


이 보고가 받아들여져 고려군도 기병을 집중적으로 양성하게 되었고 그 결과, 신기군(기병), 신보군(보병), 항마군(승려) 등으로 이루어진 별무반을 창설했으며, 그 규모가 17만 8천에 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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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대군(드라마 정도전 중에서)

 


그러나 1105년, 숙종은 그토록 염원하던 여진정벌을 눈앞에 두고 승하하였고, 뒤를 이어 예종(고려의 16대왕)이 즉위하였습니다.

 


1107년, 여진족이 더욱 강성해지자 예종이 숙종이 죽기 전 남긴 글을 읽고 대신들에게도 보여주며 여진족을 정벌할 것을 다짐하였고, 윤관을 원수로, 오연총을 부원수로 임명하였습니다.

 

 


| 고려의 2차 여진정벌

윤관오연총은 별무반의 17만 8천 군사를 이끌고 고려의 동쪽 국경인 장춘역에 진을 친 후에 20만 군사가 진군한다고 선전하였습니다.


그리고는 1102년에 체포했던 허정과 나불을 송환할 것이며, 잔치를 베풀 예정이라 속이고 여진족의 각 추장을 불러들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 4백여 명의 추장이 들어오자 술을 마시게 하여 취하게 한 뒤 복병이 난입하여 그들을 죽였고, 낌새가 수상하다고 여긴 60여 명의 추장은 들어오지 않자 병마판관 김부필과 녹사 척준경, 최홍정을 보내 사살하였습니다.


이윽고 윤관은 부대를 다섯으로 나누어 진군하니 고려의 군세에 기가 눌린 여진족은 겁을 먹고 달아나 들에 가축만 남아있을 정도였습니다.

여진족을 정벌하기 위해 진군하는 별무반의 이동경로



다음 시간에는 고려의 2차 여진정벌과 이 전쟁에서 활약하는 척준경사묘아리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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