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정인홍2 [임진왜란57] 승부는 삼세판! 성주성 전투 임진왜란 초반, 고니시의 1군에 의해 성주가 함락된 이후 성주는 하시바 히데카츠의 9군이 점령중이었다가 일본 제7군 모리 데루모토 휘하 장수인 가쓰라 모토쓰나의 1만 병력이 주둔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권응수 장군이 영천성을 탈환하였고, 이어서 경상좌병사 박진이 비격진천뢰를 앞세워 경주성을 탈환하면서 인근의 일본군 중 일부가 성주로 옮겨가 성주에는 2만여 명의 일본군이 주둔하게 되었습니다. 권응수 장군의 영천성 전투와 경상좌병사 박진의 1ㆍ2차 경주성 전투에 대해서는 아래 게시물을 참고해주세요. 영천성 전투 https://historicalhistory.tistory.com/79 [임진왜란37] 빼앗긴 성을 돌려받으러 왔다! 영천성 전투 4월 13일, 임진왜란이 발발하였고, 4월 22일에는 일본 제2.. 2022. 1. 1. [임진왜란26] 영남 3대 의병장의 우척현 전투 | 일본 제6군의 전라도 공격 고니시 유키나가의 일본 제1군이 평안도로, 가토 기요마사의 일본 제2군이 함경도로 진출할 때 고바야카와 다카카게의 일본 제6군은 전라도 점령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고바야카와 다카카게의 군대는 곽재우의 의병에게 정암진 전투에서 패배했고, 이후 이치와 웅치 고개를 넘어서 전주성으로 향하려 했으나 이치는 광주목사 권율과 동복현감 황진이 이끄는 조선군의 저항에 가로막혀 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웅치는 의병장 황박과 정담, 이복남의 관군이 뚫리긴 했으나 웅치에서 살아남은 조선군과 황진의 활약으로 안덕원에서 패배하면서 금산으로 퇴각했고, 거기다 고경명의 의병과 전라도 방어사 곽영의 관군이 금산성을 공격하기까지 했으니 고바야카와의 군대는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었고, 전라도 공격.. 2021. 11. 10. 이전 1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