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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국호의 유래

고구려와 백제, 신라 국호의 유래

by 역사채우기 2022. 9.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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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삼국시대로 대표되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국호는 각각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까요?

고구려의 삼족오

 

 

 

| 고구려는 왜 고구려일까?

먼저, 고구려부터 살펴보겠습니다.

 

고려시대 때 김부식이 편찬한 [삼국사기]에 따르면 '고구려'라는 국호는 고대 언어에서 쓰이던 '구려'에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의 성씨인 '고'자를 붙여서 생겨났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구려'는 무엇이고, 주몽은 왜 자신의 성씨를 고씨로 하였을까요?

주몽(드라마 주몽 중에서)

 

 

'구려'는 고대 언어에서 '위대하다', '성스럽다'라는 뜻이 있었고, '高'자는 크고 높음을 의미하는 한자어였으므로 주몽이 강건한 나라를 만들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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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고구려 '위대하고 신성한 나라', '높고 큰 나라'라는 의미를 지닌 나라였습니다.

수나라 30만 대군을 몰살시킨 살수대첩 민족기록화

 

 

그러던 고구려는 20대 왕이었던 장수왕 재위기에 '높고 빼어나다'는 의미에서 국호를 '고려'로 변경한 이후 멸망할 때까지 계속 쓰이게 되었습니다.

 

이후 668년에 고구려가 멸망하였지만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인 대조영의 발해(3대 문왕 시기), 궁예의 후고구려, 왕건의 고려 모두 국호를 '고려'로 하며 고구려의 정신을 줄기차게 이어나갔습니다.

고구려 수렵도

 

 

 

| 백제는 왜 백제일까?

기원전 18년, 주몽의 아들인 온조와 그의 형 비류는 어머니인 소서노와 그를 따르는 백성들을 이끌고 남하하였습니다.

 

그런데 도읍을 정하는 데에 충돌이 생겨 형인 비류는 바닷가인 미추홀에, 동생인 온조는 하남 위례성에 도읍을 정하였고 나라 이름을 '십제'로 하였습니다.

바닷가에 나라를 세운 비류

 

 

여기서 나라 이름을 '십제(十濟)'라고 한 이유는 10명(十)의 신하와 함께 건너왔다(濟)는 의미에서 지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후 미추홀에 나라를 세운 비류는 땅이 습하고 물이 짜서 생활이 어려웠는데 위례성의 백성들은 잘 사는 모습을 보고 후회하며 죽으니 미추홀의 백성들이 온조에게 옮겨가면서 즐거워하였고, 이에 따라 국력도 커지자 백제(百濟)로 고쳤다고 전해집니다.

 

또한, 백제의 순우리말이 온조라는 설도 있고, 중국측 기록(수서)에는 백여 호가 바다를 건너 남하하여 나라를 세웠기 때문에(百家濟海) 백제로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백제=온조?

 

 

 

| 신라는 왜 신라일까?

[삼국사기]에 신라는 멸망당한 고조선의 유민들이 살던 진한 땅에 기원전 57년, 박혁거세가 여섯 마을의 촌장에게 추대받아 왕위에 올랐다고 합니다.

신라 시조 박혁거세의 동상

 

 

하지만, 처음에는 신라가 아닌 서라벌, 사라, 사로국 등으로 불리다가 4대 탈해 이사금 때 계림으로 바꾸었지만 위의 국호들도 혼용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503년, 지증왕덕업이 날로 새로워진다는 뜻에서 '신', 사방을 망라한다는 뜻에서 '라'를 취하여 국호를 '신라'로 삼자는 군신들의 의견을 수용하여 국호를 신라로 정한 이후 935년에 멸망할 때까지 변하지 않고 쓰였습니다.

신라 황남대총 금관(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그러나 이 기록이 유교적 관점에서 쓰였다하여 신라의 고유어가 서라벌이며, 계림, 금성, 월성도 신라의 음을 각각 다르게 표기한 예라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가야부여 국호의 유래에 대해 다루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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