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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우병사 최경회2

[임진왜란68] 제2차 진주성 전투(3) 처절한 항쟁 6월 21일, 일본군 기병 200여 명이 진주성 동쪽에 모습을 드러내 정찰하였고, 뒤이어 일본군 부대가 공격하기에 앞서 진주성 주변의 해자를 메웠습니다. 당시 진주성의 조선군은 6천으로 9만 3천에 달하는 일본군에 대항하여 성을 방비할 병력조차도 부족했기 때문에 일본군이 해자를 메우고 공격 준비를 하는 모습을 보고도 감히 나서지 못했습니다. 6월 22일 아침, 일본군이 진주성 공격을 개시했으나 조선군의 공격으로 일본군 30여 명이 죽자 잠시 물러났다가 밤에 2차례 공격을 해왔으나 순성장 황진(충청병사)을 비롯한 조선군 지휘관들의 활약으로 모두 물리쳤습니다. 6월 23일, 해자를 메운 일본군은 각종 공성 무기와 수적 우세를 앞세워 낮에 3차례, 밤에 4차례 공격해왔으나 모두 격퇴하였습니다. 6월 24일에는.. 2022. 1. 23.
[임진왜란67] 임진왜란 최대 규모의 전투! 제2차 진주성 전투(2) 명나라와 일본 사이의 강화 교섭으로 휴전 기간이었으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강압적인 명령으로 일본군은 6월 15일에 함안, 16일에 반성, 18일에는 의령까지 점령하면서 점차 진주성 쪽으로 진출하였습니다. 그 군대의 규모만 해도 9만 3천에 이르렀으며, 이는 이순신과 대치 중인 일본 수군과 부산 등의 전략적 거점을 수비할 일부 일본군을 제외한 모든 전력을 진주성에 쏟아부으려는 계획이었습니다. 이들을 이끄는 지휘관은 1군 선봉장 고니시 유키나가, 2군 선봉장 가토 기요마사, 3군 선봉장 구로다 나가마사, 4군 선봉장 모리 요시나리의 휘하 시마즈 요시히로, 6군 선봉장 고바야카와 다카카게, 7군 선봉장 모리 데루모토를 대신한 모리 히데모토, 8군 선봉장이자 일본군의 총대장 우키타 히데이에, 훗날 세키가하라 전.. 2022. 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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