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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성 탈환2

[임진왜란41] 거북선의 뒤를 이을 비장의 무기 비격진천뢰! 제2차 경주성 전투 8월 20일, 경상좌병사 박진은 1만여 명의 병력을 이끌고 경주성 탈환을 시도했으나 매복해있던 일본군의 기습을 받아 600여 명의 전사자를 내며 후퇴하였습니다. 하지만 박진은 포기하지 않고 절치부심하며 경주성 탈환을 위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군기시에 소속되어 있던 화포장 이장손이란 사람이 비격진천뢰라는 새로운 무기를 개발하였고, 이 무기의 성능을 알아본 박진은 다음 전투에 도입하기로 결심합니다. * 군기시 : 무기 제조를 담당하는 관청 | '비격진천뢰'란 무엇인가? 비격진천뢰(飛擊震天雷)는 '폭발할 때 하늘을 진동하는 소리를 낸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 당시에는 화포에서 발사된 포탄이 폭발하지 않았기 때문에 폭발한다는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혁신이었습니다. 그리고 비격진천뢰의.. 2021. 12. 1.
[임진왜란40] 천년의 수도 경주를 탈환하라! 1차 경주성 전투 | 경주성 함락 1592년 4월,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일본 제2군 선봉장 가토 기요마사의 군대가 동래, 언양, 울산을 거쳐 경주로 향했습니다. 이때 경주성 방어의 책임자인 경주 부윤이 윤인함에서 변응성으로 교체되었는데 윤인함은 변응성이 임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도주해 버렸습니다. 윤인함 : 인수인계는 모르겠고 일단 살고 보자 결국 경주성은 경주 부윤이 없는 상황에서 적을 맞이하게 되었고, 경주 부윤을 대신해서 판관 박의장과 장기현감 이수일이 군사와 백성 수천 명을 동원하여 경주성을 지키기로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들 역시 일본군이 도달하기도 전에 모두 도망갔고, 뿔뿔이 흩어져 버렸습니다. 빨리 도망간 사람이나 나중에 도망간 사람이나 다를 것 없다 이렇게 경주성을 지키는 조선군은 아무도 없었고, 일본군이 무혈.. 2021. 1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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