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다치바나 무네시게3 [임진왜란113] 노량해전(3) 피로 물든 노량 해협 | 붉게 물든 노량 해협 명나라 수군 도독 진린의 묵인 하에 고니시의 연락선 1척이 사천의 시마즈 요시히로, 남해의 소오 요시토시, 고성의 다치바나 무네시게 등에게 고니시의 위급함과 함께 구원을 요청하는 서신을 보내면서 500척에 달하는 일본 수군이 창선도(경남 남해군 창선면 서대리)로 모여들었습니다. 이들은 고니시가 있는 순천까지 가장 최단 거리인 노량(경상남도 남해도와 하동 사이의 해협)을 통과해 고니시와 함께 조명연합 수군을 격멸하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를 미리 알고 있던 이순신은 적선이 노량을 빠져나오는 길목에 미리 매복해 있으면서 일본군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순신을 따르는 군사들도 그동안 온 국토를 유린한 적을 물리칠 복수심이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불타오르고 있었고, 적이 .. 2022. 9. 14. [임진왜란112] 노량해전(2) 최후의 전투를 향한 발걸음 | 어떻게든 살아나가야 한다 고니시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때는 1598년 11월, 추위는 이미 다가온 상태에서 보급은 끊어진 지 오래, 이대로 가다간 자멸할 것이 뻔한 상황에서 고니시는 어떻게든 살아날 방도를 찾으려 했습니다. 고니시는 한 가지 묘안을 생각해냈고, 그것은 남해 각지에 주둔한 일본군에게 어떻게든 구원을 요청한 뒤 그들과 함께 광양만 일대에 포위망을 형성한 조명연합군을 협공하여 이순신을 물리친 후에 철수하는 작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순신이 바닷길을 막고 있어서 먼바다로 배를 띄울 수가 없었습니다. 소서행장(고니시 유키나가)이 또 선봉으로 배 여러 척을 발송하는 것을 이순신이 공격하여 죽였다고 하니 행장이 진린에게 통하여 말하기를 "강화를 약속한 뒤에도 어찌하여 싸우는 것이오"라고 하였다 이에.. 2022. 9. 10. [임진왜란58] 기세를 타고 한양으로! 벽제관 전투(1) 1593년 1월 9일, 3차례의 탈환 시도 끝에 평양성을 되찾은 조명연합군은 여세를 몰아 1월 10일에는 개성까지 진격합니다. 고구려의 수도에 이어 고려의 수도까지! 한편, 평양성을 지키던 고니시 유키나가는 4차 평양성 전투에서 큰 피해를 입고 안전한 철수를 보장하는 협상을 맺고도 조명연합군의 추격을 받았으나 황해도에 진출해있던 일본 제3군 선봉장인 구로다 나가마사의 도움으로 간신히 한양으로 철수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평양성 전투의 소식을 듣게 된 한양의 일본군은 명나라 군대의 대규모 참전과 압도적인 화력에 겁을 먹고 남쪽으로 후퇴하자는 의견이 대다수였으나 일본 제6군 선봉장이자 전라도 진출 임무를 실패했던 고바야카와 다카카게가 "여기서 더 이상 물러난다면 적군의 기세는 더 높아질 것이고 아군의 기세.. 2022. 1. 2. 이전 1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