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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조영3

한국 최고의 요새 8편! 부여성 부여성은 부여의 옛 수도였으나 부여가 고구려에 병합되면서 고구려의 북방 거점이자 천리장성의 최북단 성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668년, 제3차 고당전쟁 때 설인귀에 의해 부여성이 함락되었고, 그 여파로 인근의 40여 개의 성까지 당나라에 항복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에 대막리지 연남건이 군사 5만을 보내 부여성을 탈환하려 했으나 설하수 전투에서 이적이 이끄는 군대에 패하면서 부여성 탈환은 실패하였고, 몇 달 후에는 평양성까지 함락되면서 고구려는 멸망하였습니다. 고구려의 멸망에 대해서는 아래 게시물을 참고해주세요. https://historicalhistory.tistory.com/11 고구려의 멸망 https://youtu.be/eyIphWEUjWM 이번 시간에는 고구려의 멸망에 대해 설명해드리겠습.. 2022. 10. 11.
발해가 우리나라 역사인 이유 https://youtu.be/n7T4siaxOMk 고구려가 우리나라 역사인 것에는 대체로 이견이 없지만 발해가 우리나라 역사인 것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거나 부정을 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발해(대진국)가 우리나라 역사인 이유 7가지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첫째로, 발해를 건국한 대조영이 고구려의 별종으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고구려와 백제의 건국세력이 부여의 별종인 것처럼 발해는 고구려의 뒤를 이은 계승국가라 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발해의 2대 왕 무왕이 일본에 보낸 국서에는 '고구려의 옛 땅을 회복하고 부여의 습속을 이어받았다' 라고 말하며 고구려 계승 의지를 분명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셋째로, 발해가 고구려의 땅만 회복한 것이 아니라 고구려가 사용했던 온돌을 사용했다는 것과 기와.. 2021. 9. 28.
발해를 건국한 대조영의 일대기 https://youtu.be/pKAqd2Th6LA | 연개소문의 죽음과 고구려의 분열 연개소문이 죽자 그의 아들들은 대막리지의 자리를 놓고 내전을 벌이면서 고구려의 상황은 점점 파국으로 치닫고 있었습니다. 결국, 권력 다툼에서 밀려난 연남생(연개소문의 첫째 아들)은 조국을 배신하고 당나라에 투항하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연남생이 거느리고 있던 고구려에 복속 중인 말갈과 거란족, 그리고 고구려의 성과 백성들까지 수십만 명에 이르는 행렬까지 당나라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당시 당나라는 당 태종 이세민(당나라의 2대 황제) 시절 수많은 군대를 이끌고 고구려를 집요하게 공격했고, 이전의 수나라와는 달리 고구려의 주요 성인 요동성, 백암성, 개모성, 비사성 등을 함락시키며 파죽지세로 밀고 나갔지만 안시성에서 안.. 2021. 7.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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