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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팽로2

[임진왜란23] 고경명의 의병과 곽영의 관군의 연합작전! 1차 금산 전투 마침내 7월 9일, 고경명은 정예 기병 수백 명을 앞세워 적진을 돌파하려 했는데 오히려 역습을 당해 후퇴하였습니다. 이에 고경명이 직접 북을 치며 싸움을 독려하자 군사들의 사기가 진작되어 일본군은 피해를 입고 후퇴하였습니다. 후퇴한 일본군은 토성을 쌓아 방어선을 구축하려 하였고, 이 모습을 본 고경명은 성밖의 관사를 불태운 뒤 포를 쏘니 성 내부까지 불길에 휩싸였습니다. 그러자 일본군은 성문을 열고 나와 포위망을 뚫으려 했으나 고경명의 의병이 사면에서 공격하자 큰 피해를 입고 감히 나오지 못했습니다. 어느새 날은 어두워지고 있었고 곽영의 관군은 적극적으로 싸움에 임하지 않았으며 일본군이 구축한 토성은 견고해서 함락시킬 수 없다고 판단한 고경명은 잠시 후퇴하였습니다. 이때 전라도 방어사 곽영은 고경명에게 .. 2021. 11. 7.
[임진왜란22] 금산성을 탈환하기 위해 모이는 관군과 의병 이번 시간에 다룰 내용은 6월 23일, 금산군수 권종이 전사하면서 함락된 금산성 전투가 아닌 고경명의 의병과 전라도 방어사 곽영의 관군이 연합하여 금산성을 공격한 전투입니다. 7월 7일의 웅치 전투와 7월 9일의 안덕원 전투로 적지 않은 피해를 본 고바야카와 다카카게의 일본 제6군은 목표였던 전주성 공격을 잠시 미루고 금산으로 후퇴했습니다. 하지만 이를 노리고 있던 대규모의 병력이 있었으니 바로 고경명이 이끄는 6천 7백의 의병이었습니다. | 고경명은 누구인가? 고경명은 임진왜란 직전(1590년)에 통정대부 겸 동래부사로 재직할 때 청렴했고, 백성들을 잘 다스렸으나 정철의 건저의 문제에 연루되면서 파직되어 고향으로 돌아간 상태였습니다. 만약 이때 고경명이 파직되지 않았다면 동래성 전투는 고경명이 지휘했을.. 2021. 1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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