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시간에 다룰 내용은 6월 23일, 금산군수 권종이 전사하면서 함락된 금산성 전투가 아닌 고경명의 의병과 전라도 방어사 곽영의 관군이 연합하여 금산성을 공격한 전투입니다.
7월 7일의 웅치 전투와 7월 9일의 안덕원 전투로 적지 않은 피해를 본 고바야카와 다카카게의 일본 제6군은 목표였던 전주성 공격을 잠시 미루고 금산으로 후퇴했습니다.
하지만 이를 노리고 있던 대규모의 병력이 있었으니
바로 고경명이 이끄는 6천 7백의 의병이었습니다.
| 고경명은 누구인가?
고경명은 임진왜란 직전(1590년)에 통정대부 겸 동래부사로 재직할 때 청렴했고, 백성들을 잘 다스렸으나
정철의 건저의 문제에 연루되면서 파직되어 고향으로 돌아간 상태였습니다.
만약 이때 고경명이 파직되지 않았다면 동래성 전투는 고경명이 지휘했을 수도 있었습니다.
물론, 동래성 전투 당시의 동래부사 송상현은 주어진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해 싸웠습니다.
동래성 전투에 대해서는 아래 게시물을 참고해주세요.
https://historicalhistory.tistory.com/45
이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고경명은 5월 29일에 담양에서 *유팽로 등과 만나 의병을 일으킬 계획을 세운 후 격문을 띄워 도내에 발송하니 고경명의 명성을 익히 알고 있던 사람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었습니다.
* 유팽로 : 임진왜란 최초의 의병장으로 고경명의 휘하에서 활약함
6월 11일, 고경명은 담양에서 출병했는데 그때는 삼도근왕군이 용인 전투(6월 5~6일)에서 패배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던 때였으므로 흩어진 군사 중 일부가 고경명의 의병으로 합류해 그 규모만 6천 7백에 달했습니다.
용인 전투에 대해서는 아래 두 게시물을 참고해주세요.
https://historicalhistory.tistory.com/59
https://historicalhistory.tistory.com/60
당시까지의 의병 중에서는 고경명의 의병이 가장 규모가 컸으니 용인 전투의 패전으로 충격에 빠졌던 백성들은 고경명의 의병에게 거는 기대가 매우 컸습니다.
고경명은 수도 한양을 탈환하는 것을 목표로 진군하였으나 고바야카와의 일본 제6군이 *금산성을 점령하고 전주성까지 손아귀에 넣으려 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 6월 23일에 고바야카와의 군대가 금산군수 권종이 전사하면서 금산성이 점령당한 일
7월 3일, 고경명과 휘하 의병들은 본도(전주)를 구원하는 게 우선이라 여겨 군사를 진산(현재의 금산군 진산면)으로 옮겼고, 웅치 전투와 안덕원 전투로 전력 손실이 커 금산으로 후퇴했던 고바야카와의 군대를 공격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웅치 전투에 대해서는 아래 게시물을 참고해주세요.
https://historicalhistory.tistory.com/62
안덕원 전투에 대해서는 아래 게시물을 참고해주세요.
https://historicalhistory.tistory.com/63
게다가 금산성 공격에는 전라도 방어사 곽영의 군대까지 합류하여 군세는 더욱 커졌고, 날랜 병사들이 의병에 많이 모여들어 기세 또한 매우 컸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음 시간에 제1차 금산 전투에 대해 이어서 다루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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