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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수군 재건2

[임진왜란85] 삼도수군통제사에 재임명된 이순신 이순신이 수군 재건에 박차를 가하던 중 8월 3일, *선전관이 선조의 명을 받고 이순신이 머물고 있던 진주에 내려왔습니다. * 선전관 : 왕의 측근에서 왕명 출납과 군무 처리 등을 맡던 무반직 이순신을 전과 같이 전라좌수사 겸 삼도수군통제사에 임명하고, 권준을 충청수사에 임명한다는 교서를 내린 것이었습니다. 잘 싸울 때 끌어내릴 때는 언제고 수군이 박살 나니까 인제 와서 다시 싸우라 하는 선조 [이충무공전서]에는 교서의 내용이 아래와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왕은 이와 같이 이르노라. 아! 나라가 의지하여 보장으로 생각해 온 것은 오직 수군뿐인데, 하늘이 화를 내린 것을 후회하지 않고 다시 흉한 칼날이 번득이게 함으로써 마침내 우리 대군이 한 차례의 싸움(칠천량해전)에서 모두 없어졌으니, 이후 조선의 바.. 2022. 6. 8.
[임진왜란84] 절망에서 희망으로! 수군 재건에 나서는 이순신 7월 16일의 칠천량 해전과 뒤이은 원균의 실책으로 100척이 넘는 판옥선 중 절반 이상과 귀선(거북선) 3척이 모두 격침되었고, 이순신의 휘하에서 불패의 신화를 자랑했던 노련한 군사들은 죽거나 뿔뿔이 흩어져 버렸습니다. 이에 이순신이 삼도수군통제사였던 시절 숨죽이고 왜성에 틀어박힌 채 해전 자체를 두려워했던 일본군은 위의 해전으로 거칠 게 없어지자 천하의 요새 견내량을 넘어 한산도 통제영을 접수하고 인근을 노략질하였습니다. 이때 도원수 권율 밑에서 백의종군 중이던 이순신은 칠천량해전이 벌어진 이틀 후인 7월 18일, 조선 수군의 대패를 보고받자마자 권율과 향후 대책을 논의 후 9명의 군관과 6명의 병사와 함께 초계를 지나 단성, 진주, 곤양, 노량을 지나면서 거제 현령 안위, 경상우수사 배설 등의 패잔.. 2022. 6.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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