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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임진왜란

[임진왜란84] 절망에서 희망으로! 수군 재건에 나서는 이순신

by 역사채우기 2022. 6.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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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6일의 칠천량 해전과 뒤이은 원균의 실책으로 100척이 넘는 판옥선 중 절반 이상과 귀선(거북선) 3척이 모두 격침되었고, 이순신의 휘하에서 불패의 신화를 자랑했던 노련한 군사들은 죽거나 뿔뿔이 흩어져 버렸습니다.

이에 이순신이 삼도수군통제사였던 시절 숨죽이고 왜성에 틀어박힌 채 해전 자체를 두려워했던 일본군은 위의 해전으로 거칠 게 없어지자 천하의 요새 견내량을 넘어 한산도 통제영을 접수하고 인근을 노략질하였습니다.

한산도와 견내량의 위치(출처 : 국토정보플랫폼 국토정보맵)



이때 도원수 권율 밑에서 백의종군 중이던 이순신은 칠천량해전이 벌어진 이틀 후인 7월 18일, 조선 수군의 대패를 보고받자마자 권율과 향후 대책을 논의 후 9명의 군관과 6명의 병사와 함께 초계를 지나 단성, 진주, 곤양, 노량을 지나면서 거제 현령 안위, 경상우수사 배설 등의 패잔병을 수습하고 군수물자 확보에 힘썼습니다.

* 단성 : 산청군 단성면
* 곤양 : 경남 사천시와 하동군 일대
* 노량 : 경남 남해군 노량리와 하동군 노량리 사이의 해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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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수군 재건로



당시는 이순신이 아직 백의종군을 하고 있었고, 삼도수군통제사 원균은 생사조차 알 길이 없는 상황 속에서 남해-서해를 거쳐 서진하는 일본 수군과 전라도를 넘어 북상하려는 가토, 고니시 등의 일본 육군이 합세하여(수륙병진 작전) 보급 문제를 해결한 뒤 한양 도성을 지나 조선 전체를 집어삼킬 최악의 시나리오가 전개되고 있었습니다.

일본군의 전략인 수륙병진작전



그래서 이순신은 모친상 중인데다가 그간 애지중지 키워놓은 수군이 궤멸되었다는 보고를 받고 절망스러웠지만, 머지않아 자신이 다시 삼도수군통제사에 제수될 것을 예견했기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수군을 재건하여 일본 수군의 서진을 바다에서 막아내 백성들의 안위를 지키고,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야욕을 무너뜨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행한 조치였습니다.

 

점심을 먹은 뒤 노량에 이르렀더니 거제 현령 안위와 영등포만호 조계종 등 10여 명이 와서 통곡하였다.
또 피해 나온 군사와 백성들도 울부짖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경상 수사(배설)는 도망가고 보이지 않았다.

우후 이의득이 찾아왔기에 패했던 상황에 관하여 물었다.
모든 사람이 울며 말하기를 "대장 원균이 적을 보자 먼저 뭍으로 달아나고 장수들도 모두 그를 따라 뭍으로 달아나 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하였다.
또한 대장의 잘못은 말로 다 할 수가 없고 그 살점이라도 뜯어먹고 싶다고들 하였다.
거제의 배 위에서 자면서 거제 현령(안위)과 새벽 2시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조금도 눈을 붙이지 못하여 눈병을 얻었다.

- 7월 27일 [난중일기]




다음 시간에 이순신의 삼도수군통제사 재임명에 대해 다루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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