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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도 통제영3

[임진왜란84] 절망에서 희망으로! 수군 재건에 나서는 이순신 7월 16일의 칠천량 해전과 뒤이은 원균의 실책으로 100척이 넘는 판옥선 중 절반 이상과 귀선(거북선) 3척이 모두 격침되었고, 이순신의 휘하에서 불패의 신화를 자랑했던 노련한 군사들은 죽거나 뿔뿔이 흩어져 버렸습니다. 이에 이순신이 삼도수군통제사였던 시절 숨죽이고 왜성에 틀어박힌 채 해전 자체를 두려워했던 일본군은 위의 해전으로 거칠 게 없어지자 천하의 요새 견내량을 넘어 한산도 통제영을 접수하고 인근을 노략질하였습니다. 이때 도원수 권율 밑에서 백의종군 중이던 이순신은 칠천량해전이 벌어진 이틀 후인 7월 18일, 조선 수군의 대패를 보고받자마자 권율과 향후 대책을 논의 후 9명의 군관과 6명의 병사와 함께 초계를 지나 단성, 진주, 곤양, 노량을 지나면서 거제 현령 안위, 경상우수사 배설 등의 패잔.. 2022. 6. 4.
[임진왜란83] 칠천량 해전의 결과와 원균의 생존 여부 | 칠천량해전의 결과와 그 여파 7월 15일의 칠천량해전과 경남 고성 춘원포에서 삼도수군통제사 원균이 살아남은 배를 버리고 도망친 결과, 조선 수군은 주력 전함인 판옥선 60~70척이 격침되었고, 일본군에게 공포 그 자체였던 거북선 또한 3척이 격침되었습니다. * 춘원포 : 통영시 광도면 황리 또는 통영시 용남면 춘원포로 추정 당시 삼도수군이 거느린 판옥선의 숫자가 1백 척이 넘었었고, 위의 전투로 많은 전선이 격침되었으나 경상우수사 배설을 중심으로 원균의 명령을 거부하고 한산도 방면으로 제각기 후퇴한 잔여 전선들은 격침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순신과 함께 여러 해전에서 활약했던 전라우수사 이억기와 충청수사 최호는 전사하였고, 사도첨사 김완은 포로로 붙잡혔으며, 최대 1만에 이르는 조선 수군이 전.. 2022. 6. 1.
[임진왜란71]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의 출격! 제2차 당항포 해전 1593년 8월, 조선 조정에서는 일본군의 해상 퇴로를 차단함은 물론, 연합함대의 지휘권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전라좌수사 이순신을 경상좌ㆍ우수영, 전라좌ㆍ우수영, 충청수영의 수군을 총지휘하는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하였고, 이순신은 전라좌수영의 본영인 여수를 떠나 한산도에 전진기지(통제영)를 세웠습니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에는 보통의 경우 경상우수사가 삼도수군통제사를 겸직하였으므로 경상우수사 원균이 개전 초반 70척 혹은 100척의 함대를 수장시키지 않았더라면 원균이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이후 1594년 3월,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은 일본군의 동향을 살피던 중 당항포에 적선 30여 척이 정박해 있다 는 첩보를 받고 다시 한번 출정에 나섰습니다. 이는 이순신의 6차 출전이었으며, 동원된 전선.. 2022. 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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