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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고려와 거란의 전쟁

거란의 1차 침입과 서희의 외교담판

by 역사채우기 2021. 8.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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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IwuBxmN-Ktk

 


이번 시간에는 거란의 고려 1차 침입에 대해 설명해드리겠습니다.

 

926년에 발해거란의 침입으로 멸망한 후 고려로 망명해오는 유민들을 왕건(고려의 태조)은 후하게 대접하였습니다.

 

이후 942년에는 요 태종(거란의 6대 황제)이 국경을 접하게 된 고려와 통교하기 위해 사신과 낙타 50마리를 보냈는데 왕건은 사신 일행을 귀양 보내고 데려온 낙타는 만부교(개경(개성)의 보정문 안에 있는 다리) 밑에 묶어서 굶겨 죽이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만부교 사건)

 

 

발해의 멸망에 대해서는 아래 게시물을 참조해주시면 좋겠습니다.

https://historicalhistory.tistory.com/6

 

발해는 왜 멸망했을까?

https://youtu.be/QtCcFjkpgXU 이번 시간에는 발해의 멸망과 그 이유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발해의 10대 왕인 선왕이 무너져가던 발해를 일으켜 세워 전성기를 이룩했고(해동성국) 11대 왕인 대이진과 1

historicalhistory.tistory.com

 

 

이후에도 왕건은 훈요 10조에서

 

'거란은 발해를 멸망시켰고, 짐승과 같은 무도한 나라이니 의관과 제도를 본받지 말라'

 

라고 할 정도로 거란을 적대시했으며, 북진정책을 통해 요나라(거란족이 세운 나라)가 점유한 고구려의 옛 땅을 귀속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당시 고려에는 수만 명에 달하는 발해 유민이 있었으니 그들을 위로하기 위해 취한 행동이었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그리고 고려의 4대 왕인 광종은 송나라와 국교를 맺어 송나라의 문물을 받아들이는 친송정책을 펼쳤고 광군 30만 명을 양성하여 거란의 침입에 대비하였습니다.

 

게다가 발해 유민이 세운 나라인 정안국 역시 반거란 정책과 친송정책을 펼쳤으니 이는 연운 16주를 두고 송나라와 대치 중인 요나라가 국제적으로 고립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외교적으로 고립된 요나라(거란족)

 

 

 

| 거란(요나라)의 1차 침입

요나라는 고려의 배후를 압박하고, 위기를 벗어나기 위하여 986년에 정안국을 멸망시켰고, 993년 10월에는 동경유수 소손녕이 고려를 침입하였습니다.

 

 

정안국에 대해서는 아래 게시물을 참고해주세요!

https://historicalhistory.tistory.com/7

 

발해의 또다른 시작! 발해부흥운동

https://youtu.be/uU7UHdDmivM 이번 시간에는 발해 멸망 후 이어진 발해부흥운동(후발해, 정안국, 흥요국, 대발해국)에 대해 다루겠습니다. | 후발해의 역사 925년 요나라(거란족)의 침입으로 926년에 발해

historicalhistory.tistory.com

 


이에 고려의 성종(고려의 6대 왕)은 시중 박양유, 내사시랑 서희, 문하시랑 최량 등에게 군사를 이끌고 북계로 가서 거란군을 막게 하였으며, 성종도 친히 나서서 안북부에 주둔하였습니다.

빨간색으로 표시된 부분이 북계

 


소손녕은 남하하여 봉산군에 도착하였고, 그곳을 지키고 있던 고려군을 4개 부대로 나누어 공격하자 군민들의 항전에도 불구하고 함락되면서 선봉군사 윤서안 등이 포로로 잡혔습니다.


그러자 패전 소식을 듣고 두려움을 느낀 성종은 더 이상 진군하지 못하고 되돌아왔습니다.

 

 

| 항복할 것인가 땅을 떼어주고 항복할 것인가

의기양양해진 소손녕은 80만 대군이 왔으니 항복하라고 종용하자 겁먹은 고려 조정은 '항복하자'는 의견(항복론)과 '서경 이북의 땅을 떼주고 황주에서 자비령까지를 국경선으로 하자'(자비령 이북 할지론)는 의견으로 나뉘었습니다.

이래도 항복 저래도 항복(싸우는 선택지는 없다)

 


결국, 성종은 땅을 떼주고 항복하자는 의견에 따라 서경(평양)의 곡식 창고를 열어 백성들에게 나눠준 뒤 그래도 남은 곡식이 많자, 거란군의 손에 들어갈 것을 우려해 대동강에 버리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서희와 이지백이 반대하였으며 서희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서희 표준 영정(출처 : dh.aks.ac.kr/)

 

"식량이 넉넉해야 성을 지킬 수 있고, 전투에도 이길 수 있습니다.
전쟁의 승부는 군대의 강약이 아닌  적의 약점을 살펴 기동하는 데 있으니 어찌 조급히 식량을 버릴 수 있겠습니까?
하물며 식량은 백성의 생명이니 적의 군량이 될지라도 어찌 헛되이 강에 버리겠습니까?"

"그리고 지금 그들의 군세가 강성한 것만을 보고 급히 서경 이북 땅을 할양하는 것은 좋은 계책이 아닙니다.
만약 저들이 끝없이 욕심을 부려 땅을 자꾸 떼어달라고 한다면 우리 국토를 모조리 줄 수 있겠습니까?

또한, 적에게 국토를 할양하는 것은 만세의 치욕이오니 주상께서는 도성으로 돌아가시고 저희에게 그들과 싸워보게 한 뒤에 다시 의논해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성종은 그 말이 옳다고 여겨 이 의견을 받아들였습니다.  

 

 

 

| 안융진 전투

한편, 소손녕은 고려가 항복해오지 않자 무력시위의 일환으로 안융진(평안남도 안주시로 추정됨)을 공격하였습니다.

안융진의 위치(출처 : commons.wikimedia.org)

 


당시 안융진에는 발해 왕실의 후손인 중랑장 대도수유금필(고려의 개국공신)의 후손인 낭장 유방이 있었는데 전투 진행 상황은 알 수 없으나 고려군이 거란군을 맞아 승리하였고, 이 승리는 이후에 있을 서희의 외교담판에도 힘을 실어주게 됩니다.


이에 소손녕은 감히 진군하지 못한 채 항복을 요구하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 서희의 외교담판

성종은 신하들을 모았고 "누가 거란의 진영으로 가서 말로써 군사를 물리쳐 만세의 공을 세우겠는가?"라고 말하자 서희가 자청하여 소손녕의 군영으로 갔습니다.

소손녕과 담판하는 서희 민족기록화(출처 : dh.aks.ac.kr)

 


서희와 소손녕은 의전 문제로 서로 기싸움을 벌였으나 타협이 되지 않자 서희가 노하여 숙소로 돌아와 드러누워 버렸습니다.

누가 먼저 절을 할 것인가?


이에 소손녕은 서희를 비상한 사람이라 여겨 서로 인사를 나누도록 했고 소손녕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고려는 신라 땅에서 일어났고 고구려 땅은 우리 소유인데도 너희들이 침략하여 차지했다.
그리고 우리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데도 바다 건너 송나라를 섬기기 때문에 이렇게 출병하게 된 것이다.
만약 땅을 분할해 바치고 통교한다면 무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자 서희가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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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않다!
우리나라가 바로 고구려를 계승하여 국호를 고려라 하고 평양에 도읍하였다.
국경 문제를 두고 말한다면, 요나라의 동경요양부도 우리 땅에 있어야 하는데 어찌 우리가 침략해 차지했다고 하는가?

게다가 압록강 안팎도 우리 땅인데, 지금 여진이 길을 막고 있으니 요나라로 가는 것은 바다를 건너기보다 더 어렵다. 
만약 여진을 쫓아내고 우리의 옛 땅을 돌려주어 성과 보루를 쌓고 도로를 통하게 해 준다면 어찌 통교하지 않겠는가?"

고구려를 계승한 고려(서희의 주장)

 

 

이렇게 담판이 끝나고 소손녕이 요나라에 담판 내용을 보고하니 거란의 황제(요 성종, 거란의 6대 황제)가 군사 행동을 중지하라고 지시하였습니다.

 


이렇게 거란의 1차 침입은 마무리되었고, 하마터면 선조들이 힘겹게 개척한 땅을 떼어줄 뻔한 국가적 위기였으나 서희의 활약으로 말로써 요나라 군사를 철수하게 하였고, 여진족을 공격해 영토를 압록강 남쪽까지 확장할 권리를 받아냈습니다.

 


그 결과 획득한 강동 6주(흥화진, 용주, 통주, 철주, 귀주, 곽주)는 이후 거란의 2차, 3차 침입 때와 대몽항쟁(몽골의 침입) 때에도 고려의 북방 방어선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였습니다.

서희의 외교담판으로 획득한 강동 6주

 


요나라 또한, 이 담판을 통해 배후를 안정시킨 후 999년부터 송나라를 대대적으로 침공하였고 1004년에 전연의 맹(송나라 진종과 요나라 성종 사이에 체결된 강화조약)을 체결하여 매년 송나라로부터 30만의 세폐를 받았으니 고려와 요나라 양국에 좋은 결과를 가져다준 셈이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거란의 2차 침입과 이를 고려가 막아내는 과정에서 활약한 숨겨진 영웅들에 대해 설명해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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