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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한국 최고의 요새

한국 최고의 요새 6편! 한산도

by 역사채우기 2021. 10.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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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간에는 한국 최고의 요새 6편(한산도)에 대해 다루겠습니다.

한산도는 1469년, 삼군도제찰사 이종무가 병선 227척과 1만 7천의 병력을 이끌고 대마도를 정벌할 당시 한산도 주원방포에서 출전하면서 역사적인 장소가 되었습니다.

대마도 정벌 민족기록화


이후 1592년, 임진왜란이순신 장군이 한산도에서 일본 수군 장수 와키자카 야스하루의 함대를 그 유명한 학익진으로 포위 섬멸하면서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장소로 발돋움하였습니다.
이 승리로 조선이 부산을 제외한 서남해안의 제해권을 완전히 장악하자 일본군은 수륙병진이라는 전략을 대폭 수정할 수밖에 없었으며 전쟁의 주범인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해전금지령을 내리기까지 합니다.

 

* 학익진 : 학이 날개를 펴는 모양의 진법
* 수륙병진 : 바다와 육지에서 동시에 공격하는 전략으로 여기서는 육군은 육지로 진군하고, 수군은 바다를 통해 남해안에서 서해안으로 진군한 후 육군을 보급하는 전략

 


개전 초기 승승장구하며 평양까지 진군한 고니시 유키나가(1군 선봉장) 함경도까지 진출한 가토 기요마사(2군 선봉장)는 육지에서는 의병과 관군에 의해, 바다에서는 이순신에 의해 제대로 보급을 받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또한, 일본군이 서쪽으로 진군하기 위해서는 견내량을 지나야했는데 그곳에 학익진을 펼치고 버티는 조선수군을 뚫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습니다.

세키부네와 판옥선의 체급차이(판옥선>세키부네)+각 배에 실을 수 있는 화포 수량 차이(판옥선>세키부네)+ 각 군대가 사용할 수 있는 무기의 사정거리(조선군의 화포>일본군의 조총)+포위섬멸 당하기 좋은 지형

견내량 위치(출처 : 국토정보플랫폼 국토정보맵)

 

한 해 흘러 1593년에는 한산도에 삼도수군통제영(전라좌수영, 전라우수영, 경상우수영, 경상좌수영, 충청수영을 총지휘하는 기지)이 설치되면서 왜성을 쌓고 수비태세로 일관 중인 일본군과 마주하는 전진기지로 부상하였습니다.

그러다 1597년, 정유재란(임진왜란 중 강화협상이 결렬되자 일본군이 다시 침입한 전쟁) 때 원균의 칠천량해전으로 조선수군이 궤멸되자 경상우수사 배설한산도청야전술을 펼치면서 한산도는 일본군의 손아귀에 들어갔고, 삼도수군통제영의 지위도 잃어버리게 됩니다.

청야전술 : 아군이 후퇴할 때 무기나 식량 등의 군수물자를 불태워 적군이 사용할 수 없게 만드는 전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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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천량해전(출처 : 한국문화관광연구원)

 

그렇게 잊혀져가던 한산도는 1738년, 삼도수군통제사 조경이 제승당을 중건하고, 유허비를 세우면서 복원되었으며, 이후에도 여러차례 보수를 진행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제승당(운주당) : 이순신이 삼도수군 장수들과 작전회의를 구상하던 곳
유허비 : 선현(여기서는 이순신)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비석

현재 한산도의 모습(출처 : ko.wikipedia.org)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하는 적에
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
- 이순신 장군의 [한산도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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