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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우병사 김응서3

[임진왜란105] 임진왜란의 원흉! 가토의 목을 취하라! 제2차 울산성 전투 1597년 12월 23일에서 1598년 1월 4일까지 열흘에 걸친 1차 울산성 전투에서 명나라 경리 양호와 도원수 권율이 이끄는 조명연합군은 성의 수장이자 임진왜란의 원흉인 가토 기요마사의 목을 취하는 것과 울산성(도산성, 현재의 학성공원)을 함락시키는 것을 목표로 했으나 2번이나 승기를 잡고도 결정적인 기회를 놓치는 바람에 목표 달성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1차 울산성 전투에 대해서는 아래 게시물을 참고해주세요. https://historicalhistory.tistory.com/144 [임진왜란102] 1차 울산성전투(1) 두려움에 빠진 적을 교란하라! | 공격목표는 어디인가 육지에서의 직산 전투와 바다에서의 명량 대첩으로 북진이 좌절된 일본군은 더 이상의 무의미한 전쟁을 끝내고 귀국하려 했지만 도요.. 2022. 8. 17.
[임진왜란79] 기문포 해전의 전말과 원균의 실상 | 기문포 해전의 전말 3월 9일에 벌어진 기문포 해전으로 조선 수군은 일본군 수십 명을 사살했으나 아군의 피해는 이보다 더 큰 140여 명의 사상자가 나왔고, 개전 이래 처음으로 판옥선 1척이 격침되었습니다. 원균이 이 해전의 장계를 보내자 비변사는 전투 경과를 조사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원균의 비열한 행동이 낱낱이 드러났습니다. 경상우병사 김응서와 고니시 유키나가의 참모 요시라 사이에서 일본군이 거제도 일대에서 나무를 해도 된다는 약조가 체결된 상태였고, 지난 해전에서 죽인 일본군이 그들이었던 것입니다. 아래는 비변사와 선조의 대화입니다. 비변사가 회계하기를, "원균이 바친 수급이 만약 나무를 베러 왕래하는 왜라면 쳐들어와서 사람을 죽인 왜적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제장을 독려하여 역전, 참획.. 2022. 2. 21.
[임진왜란76] 강화 회담의 결렬과 이순신의 파직 1592년에 발발했던 임진왜란은 벌써 여러 해를 넘겨 1597년이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명나라와 일본 사이의 강화는 계속 진행 중이었고, 그러는 동안 일본군은 남해안 연안 곳곳에 왜성을 쌓아 혹시라도 진군해올지 모르는 조선 수군을 방비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순신은 지난 임진년 때처럼 여러 차례 일본군을 공격하러 나서기 어려웠고, 일본군 역시 조선 수군과 싸워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하여 조선 수군과 일본 수군은 서로 대치한 채 세월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 강화 회담의 결렬 그러던 중 명나라 경락 송응창은 강화의 조건으로 크게 3가지를 들었습니다. 첫 번째는 일본군이 조선에서 완전히 철수할 것 두 번째는 국경인이 넘겨준 조선의 두 왕자(임해군, 순화군)를 송환할 것 세 번째는 전.. 2022. 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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