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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첨사 김완4

[임진왜란82] 칠천량해전(2) 희망을 절망으로 바꾼 원균의 결단 | 아직은 희망이 있다, 그렇지만 원균 휘하에서는 절망뿐이었다. 지난 전투에서 보여준 삼도수군통제사 원균의 무능한 행보로 많은 군사와 함대를 잃은 조선 수군은 매우 위축되었고, 지친 상태에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원균은 칠천량에 함대를 정박시키고는 인근에 척후선을 보내거나 경계병을 세우지도 않고 술에 찌들어있을 뿐이었습니다. * 칠천량 : 경남 거제시 하청면 실전리와 하청면 어온리 사이의 해협 그날 밤, 적선 2척이 아군 진영에 다가와 포를 쏘자 조선군 진영은 화들짝 놀라 혼란에 빠졌고, 제각기 도망치기에만 급급한 상황이 연출되었습니다. 7월 16일 5경(새벽 3시~5시)에 적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포를 쏘아 한밤을 놀라게 했다. 우리 수군은 이미 어찌할 수 없이 매우 급하게 되어 배를 멈추니 날랜 .. 2022. 5. 29.
[임진왜란 16] 율포해전과 제해권을 넓혀 나가는 조선 수군 6월 5일~6월 6일까지 조선 수군은 당항포에서 일본 수군을 맞아 26척을 격침시키는 승리를 거두었지만, 6일에는 비가 내려 시야를 관측하기 힘들었으므로 당포(경남 통영시 산양읍 삼덕리)로 이동하여 휴식을 취했습니다. 그날 저녁, 조선 수군은 마루장(경남 고성군 동해면)으로 이동했고, 다음 날 아침(7일) 척후선(정찰선)을 보내 인근의 적선을 수색한 결과, 영등포에 있던 척후선이 율포(경남 거제시 장목면 율촌리)에서 부산으로 이동 중인 적 대선 5척, 중선 2척을 발견했다고 전했습니다. 6월 7일 정오쯤, 조선 수군은 영등포를 거쳐 역풍을 딛고 율포 앞바다까지 추격하자, 당황한 일본 수군은 싸울 의지를 잃고 그간 노획했던 물건들을 모두 바다에 던져버리고 도주하기 시작했습니다. * 일본 수군의 입장에서 조.. 2021. 10. 26.
[임진왜란 14] 파죽지세의 조선 수군! 당포해전 6월 2일 8시경, 이순신과 조선 수군은 사천해전을 승리로 이끈 뒤 사량도에서 휴식을 취하던 중 당포에 왜선이 정박해있다는 보고를 받고는 곧바로 당포(경남 통영시 산양읍 삼덕리)로 진군했습니다. 당시 당포에는 대선 9척, 중소선 12척으로 총 21척의 왜선이 있었습니다. 이순신은 앞서 사천해전 때와 같이 곧바로 거북선을 보내 적진을 뒤흔들어 놓은 뒤 주력인 판옥선을 이끌고 남은 적선을 분멸시키도록 했습니다. 이 전투 역시 수적으로 조선군이 우세했고, 연전연승으로 사기까지 충만해있던 데다가 일본군의 조총은 조선군의 화포에 상대가 되질 못했으니 조선군은 어렵지 않게 적을 물리쳐 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전투가 조선군에게 유리하게 진행되던 중 일본군 대장선 역시 판옥선과 거북선에서 날아드는 화살과 포탄을 .. 2021. 10. 24.
[임진왜란9] 조선군의 첫 승리! 옥포 해전 https://youtu.be/1IPxGjlc8kI | 이순신은 누구인가? 이순신은 1년 전만 해도 정읍 현감(종6품)으로 근무하며 일개 수령에 지나지 않았으나 전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류성룡의 추천으로 품계를 몇 단계나 뛰어넘으며 전라좌수사(정3품)로 임명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사간원과 조정 대신들 모두 반대하였으나 선조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순신만은 승진시킬 것을 강력하게 주장하였습니다. 그리고 선조는 반대를 피하기 위해 이순신을 정읍 현감에서 진도 군수로 승진시킨 후 부임하기도 전에 가리포첨사로 임명하였고, 역시 부임하기 전에 전라좌수사로 임명하였습니다. 이는 이순신이 류성룡과의 개인적인 친분보다는 6진에 있던 시절 혁혁한 전공을 세웠고, 정읍 현감으로 근무했을 때에도 선정을 베풀었으며, 그리고.. 2021. 10.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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