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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4

[임진왜란7] 일본군 조총병과 조선 기마부대의 회전! 탄금대 전투 https://youtu.be/1jEAWJFhjrg | 충주 탄금대 전투 한편, 일본군 역시 조령이 천하의 요새인 것을 알고 있었기에 조령을 넘는 것을 두려워했으나 막상 정찰해보니 사람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아 크게 기뻐했다고 합니다. 4월 28일, 고니시가 이끄는 일본군은 군대를 좌군, 우군, 본군, 별동대, 이렇게 넷으로 나눈 후 자신이 본군을 맡아 진군하였고, 민가를 불태우자 조선군은 연기를 보고 일본군이 근처에 다다랐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때 신립은 일본군을 보고 기병대를 보내 고니시의 본군을 향해 돌격을 지시하면서 전투는 시작되었고, 조선군은 논밭과 습지, 거기다 비까지 내린 땅을 딛고 이동하는 것이 매우 불리하게 작용하였습니다. 이에 맞서 고니시의 본군은 조총을 발사했고, 기동력이 떨어진 .. 2021. 10. 15.
[임진왜란6] 탄금대 전투와 신립 장군의 전설 4월 13일에 부산 앞바다에 모습을 드러낸 고니시 유키나가의 일본 제1군은 14일에 부산진성을 함락시켰고 다음 날인 15일에는 다대포성과 동래성까지 함락시켰습니다. 그 이후로 후속 부대가 상륙하여 20일에는 구로다 나가마사의 일본 제3군이 김해성을 함락시켰으며, 같은 달 25일에는 고니시 유키나가가 상주에서 이일의 군대를 궤멸시키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때 상주에서 패한 이일은 일본군에게 쫓기면서 갑옷을 벗고 상투도 풀어버린 채 주야로 도망치다 가까스로 신립이 있는 충주에 다다랐습니다. 그 시기 일본군은 조선에는 조령, 죽령, 추풍령의 험한 산지가 있었기에 1군의 고니시 유키나가는 조령, 2군 가토 기요마사는 죽령, 3군 구로다 나가마사는 추풍령을 각각 넘어 도읍인 한양을 향해 진군하려 하였습니다. 한편, .. 2021. 10. 14.
[임진왜란5] 상주 전투와 도망가는 관군 | 이번 전투 이길 수 있을까? 이일은 3백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대구로 향하려 했으나 당시 병조판서였던 홍여순은 무슨 일이든 자기 마음대로 처리하는 나쁜 성격을 갖고 있었습니다. 홍여순은 민간의 잡인들을 병적에 등록시켜 군대를 편성해 놓았고, 그 군대에는 서리와 유생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 서리 : 각 지방에서 근무하던 하급 관료 게다가 급하게 징집된 잡인들이 군사훈련을 제대로 받았을 리 없었으며, 무기 대신 책을 들고 군대에 차출되기 싫다며 호소하는 유생들이 소란을 피우기도 하였습니다. 일각에서는 이일이 북병사로 근무하던 시절 조산보만호 이순신의 거듭된 병력 증원 요청을 거절하여 녹둔도에서 큰 피해를 받게 한 원인을 제공하였고(녹둔도 전투), 그 책임을 뒤집어씌우려 했던 일을 알고있던 병사들이 이일.. 2021. 10. 13.
[임진왜란4] 김해성 전투와 임진왜란 최초의 의병 https://youtu.be/wyHFiJNSUew 고니시 유키나가가 이끄는 일본 제1군이 부산의 여러 성을 함락하고 북진하고 있을 무렵 가토 기요마사가 이끄는 2군, 구로다 나가마사가 이끄는 3군도 부산에 각각 상륙하였습니다. | 김해성 전투 그 중 구로다 나가마사의 1만 3천 병력은 김해성으로 향했습니다. 김해성을 지키는 김해부사 서예원과 초계군수 이유검은 불과 1천여 명의 병력으로 4월 17일부터 시작된 일본군의 공격을 3차례나 막았으나 점점 패색이 짙어지자 백성들을 버리고 각자 살길을 찾아 도망쳤습니다. 지휘관이 도망치자 남은 군민들은 사기가 떨어졌으나 그 자리를 송빈, 김득기, 이대형, 류식 등이 각각 의병을 이끌고 끝까지 전투를 지휘하다 모두 장렬히 전사하면서 성이 함락되었습니다. 이들은 임진.. 2021. 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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