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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임진왜란

[임진왜란6] 탄금대 전투와 신립 장군의 전설

by 역사채우기 2021. 10.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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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3일에 부산 앞바다에 모습을 드러낸 고니시 유키나가의 일본 제1군은 14일에 부산진성을 함락시켰고
다음 날인 15일에는 다대포성동래성까지 함락시켰습니다.


그 이후로 후속 부대가 상륙하여 20일에는 구로다 나가마사의 일본 제3군이 김해성을 함락시켰으며, 같은 달 25일에는 고니시 유키나가상주에서 이일의 군대를 궤멸시키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때 상주에서 패한 이일은 일본군에게 쫓기면서 갑옷을 벗고 상투도 풀어버린 채 주야로 도망치다 가까스로 신립이 있는 충주에 다다랐습니다.

 


그 시기 일본군은 조선에는 조령, 죽령, 추풍령의 험한 산지가 있었기에 1군의 고니시 유키나가조령, 2군 가토 기요마사죽령, 3군 구로다 나가마사추풍령을 각각 넘어 도읍인 한양을 향해 진군하려 하였습니다.


한편, 신립은 후삼국시대 때 왕건을 도와 개국공신 1등으로 책봉된 신숭겸의 후손이었고, 일찍이 이일과 함께 기병을 이끌고 니탕개의 난을 진압하면서 명성을 떨친 바 있었습니다.

 

* 니탕개의 난 : 1583년, 니탕개를 중심으로 한 여진족이 3만 군대를 이끌고 함경도를 침입한 사건

신립 장군의 초상화

 

그리고 충주로 가기 전 선조에게 상방검을 받아 중앙군을 이끌고 내려갔으며 충주로 가는 도중, 인근의 병사들을 규합하여 8천 또는 1만 6천의 군사를 확보합니다.
불과 수십 명을 이끌고 내려간 순변사 이일과는 확실히 다른 대목입니다.

 


| 어디서 싸울 것인가?

4월 26일, 충주에 도착한 신립은 험한 지세가 있는 조령을 버리고 북방에서 여진족을 상대할 때처럼 자신이 보유한 기병의 효과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탄금대의 넓은 벌판에서 배수진을 치고 싸우려고 하였습니다.


배수진은 강물을 등지고 진을 친다는 뜻으로 후퇴할 길을 막아 죽음에 임하는 각오로 싸우기 위한 진법이었습니다.그리고 탄금대는 일찍이 삼국시대에 가야 출신의 우륵가야금을 탔다는 데서 유래한 지명으로 그 근처에는 달천평야가 있어 논과 밭이 많아 말을 달려 싸우기에는 어려운 지형이었습니다.

탄금대 사진


신립이 자신의 진영으로 도망쳐 온 이일에게 일본군에 대해 물으니 이일이 말하기를

 

일본군은 신병(神兵)이니 대적하기 어렵고, 험준한 곳을 점거하여 싸우지 않고 넓은 들판에서 싸운다면 당해낼 도리가 없을 것이니 한양으로 후퇴하여 싸울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그리고 종사관 김여물 역시 신립의 의견에 반대하며 새재에 있는 험한 지세를 방패 삼아 매복한 뒤 궁병으로 공격한다면 적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하였으나 신립은 두 사람의 의견을 모두 묵살하고 탄금대에 진을 쳤습니다.

 


신립은 우리의 주력은 기병이고 일본군은 보병이니 쉽게 이길 수 있으며 일본군이 조총이라는 신무기를 갖고 있지만 명중률이 낮아 쏜다고 다 맞는 것도 아닐뿐더러 우리에게는 편전이 있으니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편전(영화 '최종병기 활' 중에서)

이때 당대 명장으로 불리던 신립이 유리한 지형인 조령을 버리고 불리한 지형인 탄금대에 진을 친 행동을 당시에나 지금이나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큰 논쟁거리였으며 이와 관련된 전설이 내려오고 있습니다.

 


| 귀신에 홀린 신립?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 신립문경새재를 지나다 날이 어두워 어느 기와집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산세가 험해 천하의 요새로 유명한 문경새재

그 집에는 처녀 한 명이 홀로 지내고 있었고, 그녀는 신립에게

 

"가족과 함께 살았었는데 귀신이 다 잡아가서 저 혼자만 남게 되었으니 이제는 제 차례입니다.
부디 저를 살려주세요"

 

라고 말했습니다.


신립은 그녀의 요청을 수락했고, 밤이 되자 귀신이 나타나 서로 싸웠는데 귀신은 신립에게 패하고 달아났습니다.


다음 날, 날이 밝자 신립은 떠나려 했으나 처녀는

 

"저를 구해주셨으니 저는 이미 장군에게 맡긴 몸입니다. 장군을 따라가겠습니다"

 

라며 신립을 붙잡았습니다.

 

하지만 신립은 처녀의 간곡한 요청을 뿌리치며 집을 나오는 순간, 처녀는 신립을 부르더니 지붕 위에서 떨어져 죽었습니다.


이후 신립이 함경도에서 여진족과 전투를 치를 때면 꿈에, 이전에 죽은 처녀가 나타나 어떻게 싸우면 되는지 도움을 주었고, 신립은 그때마다 승리하였습니다.


시간이 흘러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신립충주로 내려갔을 때의 일이었습니다.

신립은 당연히 조령에 진을 치려고 했으나 이번에도 어김없이 꿈에 죽은 처녀가 나타났고, 처녀는 신립에게 훈련도 제대로 안 된 상태에서 산악전을 펼치면 군사들은 모두 도망갈 것이니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쳐 도망갈 길이 없게 만들어야 죽을 각오로 싸울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신립은 처녀의 말을 듣고 탄금대배수진을 쳤고, 꿈속의 처녀는 신립이 자신을 데려가지 않은 것에 앙심을 품고 위와 같이 말했다고 하는 전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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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금대에 배수진을 친 신립

 

 

다음 시간에는 [임진왜란7] 탄금대 전투(2)에 대해 다루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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