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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임진왜란

[임진왜란88] 황석산성 전투(1) 포위망을 좁혀오는 일본군

by 역사채우기 2022. 6.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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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군의 황석산성 포위

1597년 8월 16일, 우키타 히데이에가 이끄는 일본 좌군에 의해 남원성이 함락되었습니다.

같은 날, 모리 히데모토구로다 나가마사가토 기요마사 등이 이끄는 일본 우군의 73,700명이 황석산성(경남 함양군)에 다다랐습니다.

황석산성(출처 : 문화재청)



황석산성은 해발 1,190m의 고지를 따라 쌓은 높이 3m, 둘레 8.9km의 산성이며, 거창에서 *육십령을 넘어 전주로 들어가는 길목에 위치한 요충지였기 때문에 도체찰사 이원익이 지리적 중요성을 강조했던 곳이고, 이러한 이유로 일본군의 침입이 예상되었기 때문에 안음현감 곽준은 이원익의 지시에 따라 안음(함양군 안의면), 거창, 함양의 군사와 백성, 그리고 무기와 식량을 모두 황석산성으로 모으고 인근에 청야작전을 전개하였습니다.

 

* 육십령 : 경남 함양군 서상면 상남리에서 전북 장수군 장계면 명덕리로 통하는 소백산맥의 고갯길로, 고개가 높고 험해서 도적들이 많았기 때문에 성인 남성 60명 이상이 있어야 지날 수 있어야 한다는 데서 육십령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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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십령(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8월 16일, 일본 우군은 병력의 우세함을 앞세워 황석산성을 겹겹이 포위한 후 항복을 권유했으나 안음현감 곽준 이하 관군과 백성들은 항복 반대의 뜻을 내비치며 죽음을 각오하고 결사항전의 의지를 불태웠습니다.

조선군이 항복을 반대하자 같은 날 밤, 일본군은 가토 기요마사가 성의 남쪽을, 구로다 나가마사가 성의 동쪽을, 나베시마 나오시게가 성의 서쪽 공격을 담당하기로 한 후 즉각 공세에 나섰습니다. 


이때 안음현감 곽준은 경사가 상대적으로 완만한 성의 남쪽을 지키고 있었고, 전임 김해부사 백사림은 성의 북쪽을 방어했으며, 기록에는 없지만 전임 함양군수 조종도가 성의 동쪽을 지켰을 것이라 짐작됩니다.

당시 조선군은 수백 명이었고, 성의 백성들을 포함해도 많아야 수천인 데 반해 일본군은 수만의 병력을 이끌었기 때문에 애초에 상대가 안 되는 전투였지만 조선군의 성을 지키고자 하는 결의 하나만큼은 대단했습니다.

 

 

 

 

다음 시간에 황석산성 전투에 대해 이어서 다루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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