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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임진왜란

[임진왜란107] 사천왜성전투(2) 불의의 사고와 엇갈린 희비

by 역사채우기 2022. 8.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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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 제독 동일원과 조선의 경상우병사 정기룡이 이끄는 4만 대군은 사천왜성시마즈 요시히로를 공격하기 전, 그들의 방어 전진기지였던 망진왜성, 영춘왜성, 그리고 사천읍성(사천구성)까지 차례로 함락시켰습니다.

사천읍성(사천구성)(출처 : 문화재청)



이어서 이들은 10월 1일, 시마즈 요시히로가 있는 사천왜성(사천신성, 즉, 현재의 사천선진리성)을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천선진리성(사천왜성) 성벽(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앞선 전투에서 연이어 승리하며 사기가 고조된 조명연합군은 여느 때와 다르지 않게 맹렬한 화포 공격으로 일본군 다수에게 피해를 주며 시마즈 요시히로를 잘 압박했으나 전투 도중 갑자기 조명연합군의 진지에 갑자기 불길이 치솟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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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즈의 휘하였던 세토구치 시게하루의 부대가 조명연합군의 식량 창고를 불태워버린 것이었습니다.

이것으로 보아 조명연합군이 사천왜성을 완전히 포위하지 못한 상태였거나 진주 남강 연안의 전진 방어기지 외에도 시마즈의 손길이 미치는 거점이 여러 곳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조명연합군은 식량이 떨어져 단기결전을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군수물자의 핵심인 군량미



이로써, 조명연합군은 병력은 많았지만, 그 많은 병사를 먹일 식량이 부족했으며, 퇴각하자니 울산성순천 왜교성을 치고 있는 다른 군대에 영향을 미칠 수 있었기에 쉽사리 군대를 돌릴 수도 없었기 때문에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반대로, 시마즈의 일본군은 병력은 적어도 군량과 군수물자가 부족하지 않았으며, 자신과 구축된 세력과 연계하여 시간만 끌면 유리해지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었습니다.


또한, 시마즈는 성벽에 다수의 조총병을 배치했고, 화포에 포탄 대신 철 조각이나 금속 파편을 넣고 장전하여 위해를 가했으며, 성벽 아래에는 상당량의 화약과 지뢰를 묻어 폭발시키는 방법으로 성벽을 기어오르는 조명연합군에게 크나큰 희생을 강요했습니다.

마름쇠(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이런 상황이 반복되자 조명연합군의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식량은 식량대로 부족해 잠시 공세를 멈추고 화포 포격으로 위협만 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명나라군 진영에서 굉음이 울리며 대폭발이 일어났습니다.

명나라 포병이 다루던 불랑기포가 과열되면서 발생한 불꽃이 화약 더미에 튀면서 폭발을 일으킨 것이었습니다.

명나라의 불랑기포



이 일로 인해 명군은 몹시 당황하여 온 진중이 소란스러웠고, 폭발한 주변에는 쓰러진 명나라 병사들의 비명소리가 이어졌습니다.

이 광경은 사천왜성의 시마즈도 목격했고, 기회를 잡은 듯 슬며시 미소를 지었습니다.

시마즈 요시히로



그리고는 성 안에 최소한의 병력만 남겨두고 모든 군사를 내보내 혼란에 빠진 명나라 군대에 돌격을 명했습니다.


결국, 조명연합군(사로병진작전의 중로군)은 막대한 피해를 낸 채 남은 군사들을 겨우 수습하여 진주로 철수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전투는 1차 울산성 전투와 같이 전투 초반에는 조명연합군이 꽤 유리한 상황에서 전투가 전개되었으나 결국 함락에는 실패하고 말았고, 사천왜성 전투의 패배 소식으로 가토 기요마사가 농성 중이던 울산성을 공격하는 조명연합군(동로군) 역시 뒤를 보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2차 울산성 전투) 


이제 사로병진 작전에서 남은 건 순천 왜교성의 고니시 유키나가였습니다.

순천 왜교성의 고니시 유키나가




다음 시간에는 왜교성 전투에 대해 다루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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