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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임진왜란

[임진왜란110] 순천 왜교성 전투(3) 끝을 달리는 전쟁

by 역사채우기 2022. 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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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3일, 명나라 육군 제독 유정고니시 유키나가의 뇌물을 받아 수륙협공 작전에 참여하지 않아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과 명나라 수군 도독 진린이 단독으로 왜교성을 공격하게 되었고, 그 결과 적선 30척을 격침시키고 11척을 나포하는 등 최악의 조건에서 이순신은 엄청난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정왜기공도권]에 수록된 순천 왜교성 전투

 


하지만 이 전투에서 명나라 수군이 800여 명의 사상자를 냈고, 다수의 전선이 썰물에 빠져 일본군의 손에 넘어갔으며, 조선군은 위험에 빠진 명나라군을 구하려다 이순신이 탄 대장선이 썰물에 갇혔다가 겨우 빠져나올 정도로 위험천만한 상황이 있었고, 사도첨사 황세득과 군관 이청일 등의 지휘관이 전사하며 130여 명의 사상자를 내는 등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습니다.

사도첨사 황세득(이순신의 처종형)



이 전투를 장도해전이라 부르며, 결과적으로 조명연합군은 목표였던 순천 왜교성을 함락시키지 못했으며, 성의 수장인 고니시 유키나가를 잡지도 못했으니 사로병진책의 서로군과 수로군은 작전을 성공적으로 이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고니시의 뇌물을 받아 공격하는 시늉만 한 명나라 제독 유정의 탓이었습니다.

명나라 육군 제독 유정(드라마 불멸의이순신 중에서)



만약 명나라 육군도 성을 함께 공격했다면 성을 함락시키고, 어쩌면 고니시의 목도 취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기 때문에 많은 아쉬움이 남는 전투였습니다.


이로써, 명나라 경략 형개가 구상한 사로병진 작전은 목표했던 3곳의 성(울산성, 사천왜성, 순천 왜교성)과 그 성의 장수들(가토 기요마사, 시마즈 요시히로, 고니시 유키나가)까지 모두 놓치면서 전부 실패하게 되었습니다.

사로병진책



이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으면서 본국의 가신들은 명분없는 전쟁을 빨리 끝내려 했고, 이와 마찬가지로 계속되는 피해와 늘어지는 전쟁에 진절머리가 난 조선에 있던 일본군 장수들도 하나같이 철수 준비를 서두르기 시작했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한편, 그 소식은 명나라와 조선에도 알려졌고, 왜교성 전투 이후 이순신과 조선 수군은 7년간 조선 전역을 무자비하게 유린한 일본군을 고이 돌려보낼 수 없었기에 순천 일대의 바다를 봉쇄해 고니시의 퇴로를 차단함은 물론, 다시 순천 왜교성을 공격할 준비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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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러한 때에 명나라 수군 도독 진린은 왜교성 전투의 피해로 전투에 소극적으로 나서려했고, 이 상황을 눈치챈 고니시는 진린에게 뇌물을 주어 본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인근의 일본군에게 연락선을 띄울 길을 확보하였습니다.

명나라 수군 도독 진린(드라마 불멸의이순신 중에서)



이에 고니시의 연락선은 사천왜성시마즈 요시히로, 남해소오 요시토시(고니시의 사위), 고성에 주둔한 다치바나 무네시게 등에게 보내졌고, 자칫하면 조명연합군이 인근의 일본군에게 포위될 수 있는 형국이 전개되고 있었습니다.

노량해전 직전의 상황도




다음 시간에 노량해전에 대해 다루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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