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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임진왜란

[임진왜란112] 노량해전(2) 최후의 전투를 향한 발걸음

by 역사채우기 2022. 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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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든 살아나가야 한다

고니시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고니시 유키나가



때는 1598년 11월, 추위는 이미 다가온 상태에서 보급은 끊어진 지 오래, 이대로 가다간 자멸할 것이 뻔한 상황에서 고니시는 어떻게든 살아날 방도를 찾으려 했습니다.

고니시는 한 가지 묘안을 생각해냈고, 그것은 남해 각지에 주둔한 일본군에게 어떻게든 구원을 요청한 뒤 그들과 함께 광양만 일대에 포위망을 형성한 조명연합군을 협공하여 이순신을 물리친 후에 철수하는 작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순신이 바닷길을 막고 있어서 먼바다로 배를 띄울 수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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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서행장(고니시 유키나가)이 또 선봉으로 배 여러 척을 발송하는 것을 이순신이 공격하여 죽였다고 하니 행장이 진린에게 통하여 말하기를 "강화를 약속한 뒤에도 어찌하여 싸우는 것이오"라고 하였다

이에 진린이 말하기를 "내가 알 바 아니오. 이것은 본국의 통제사 이순신이 한 것이오"하자 행장은 걱정하여 사천남해를 통하여 구원을 청하였다

- 조경남 [난중잡록]

 

 

고니시는 구원을 청하는 배를 여러 차례 띄웠으나 이순신에 의해 번번이 격침되자 또 한 번 머리를 굴렸습니다.

얼마 후 고니시는 진린에게 또다시 뇌물을 주며 배 한 척만이라도 지나갈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명나라 수군 도독 진린(드라마 불멸의이순신 중에서)

 


진린은 한 척 정도야 괜찮겠지 하는 마음으로 이순신 몰래 길을 열어줬고, 그 배는 당연히 고니시의 구원을 요청하는 연락선이었습니다.

고니시의 연락선은 팔이 부러질 정도로 배를 저어 조명연합군의 지옥 같은 포위망을 뚫고 남해바다를 쏜살같이 지나갔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조선 수군이 이를 발견했고, 조선군은 어떻게든 연락선을 잡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하며 한산도 인근까지 노를 저었으나 아쉽게도 추격에 실패하고 돌아왔습니다.


결국, 고니시의 연락선은 남해소오 요시토시사천시마즈 요시히로, 고성다치바나 무네시게 진영에 들르며 고니시 진영의 절박한 사정을 전해주는 한편, 이순신을 물리치고 일본으로 철수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도움이 절실함을 피력하였습니다.

노량해전 전개도



사실, 남해 각지에 주둔한 일본군은 고니시를 외면하고 일본으로 철수할 수도 있었지만, 고니시를 구하고 함께 철군하기 위해 힘을 합쳤고, 흩어진 배를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명나라 수군 도독 진린의 안일함이 불러온 참사였지만, 이렇게 된 이상 몰려드는 적을 한꺼번에 물리칠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 최후의 전투를 향한 투쟁

고니시가 보낸 연락선의 결과로, 일본군은 고니시를 구하기 위해 모은 전선의 수는 기록에 따라 500여 척, 또는 300여 척으로 기록도 찾아볼 수 있는데, 여기에 순천 왜교성의 고니시가 이끄는 함대까지 합치면 일본군은 일단 수백 척을 동원할 수 있었습니다.

노량해전의 실질적 수장 시마즈 요시히로



이에 반해 조선 수군은 수십 척의 판옥선과 그보다 더 많은 수의 협선이 있었고, 명나라 수군 도독 진린 휘하에 300여 척의 사선과 호선이 뒤를 이었습니다.


이순신은 수백 척의 일본군에게 협공당하기 전에 시마즈 요시히로를 위시한 고니시 구원군을 먼저 요격하기로 하고 출정에 나섰습니다.

 

오늘 진실로 죽음을 각오하오니, 하늘에 바라옵건대 반드시 이 적을 섬멸하게 하여 주소서

- 이항복 [백사집]에 기록된 노량해전을 앞두고 결의를 다지는 이순신

 


하지만 진린은 조선 수군이 출정할 때까지도 미적거리다가 이순신의 명성과 리더십, 출전도 하지 않은 절이도해전의 공을 자신의 공으로 돌린 것에 대한 고마움, 장도해전에서 위험에 빠졌을 때 도와줬던 것에 대한 기억을 떠올려 함께 출전하였습니다.

 

 

절이도해전에 대해서는 아래 게시물을 참고해주세요.

https://historicalhistory.tistory.com/143

 

[임진왜란101] 일본군의 기습을 역기습으로 대처한다! 절이도해전

1598년 7월 16일, 명나라 수군 도독 진린과 그 휘하의 5천 군사가 고금도에서 이순신의 조선 수군과 합류하였고, 7월 18일, 도도 다카토라와 가토 요시아키는 전함 100여 척을 이끌고 고금도 공

historicalhistory.tistory.com

 

 

장도해전에 대해서는 아래 게시물을 참고해주세요.

https://historicalhistory.tistory.com/151

 

[임진왜란109] 순천 왜교성 전투(2) 장도해전

| 장도 해전 10월 3일, 이번에는 수로군과 서로군이 동시에 수륙 협공으로 순천 왜교성을 공격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서로군의 명나라 제독 유정은 지난 전투의 패배로 전투에 더욱 소극

historicalhistory.tistory.com

 



다음 시간에 노량해전에 대해 이어서 다루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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