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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임진왜란

[임진왜란111] 노량해전(1) 고니시의 뇌물

by 역사채우기 2022. 9.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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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뇌물로 육군의 공격을 막자

1598년 9월 20일에서 10월 7일까지의 왜교성 전투로 조명연합군은 다수의 일본군과 전선을 격파했으나 아군의 피해도 적지 않았으며, 왜교성과 고니시의 목을 얻는 데 실패하였습니다.

[정왜기공도권]에 실린 왜교성 전투



마찬가지로 순천 왜교성고니시 역시 성을 지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큰 피해를 입었고, 성 일대의 육로와 수로가 포위된 채 고립된 상황은 여전했습니다.

이에 고니시는 안전한 철수를 보장받기 위해 명나라 육군 제독 유정에게 또다시 뇌물을 주었고, 유정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당장 명나라 육군의 공격은 피할 수 있었습니다.

명나라 육군 제독 유정(드라마 불멸의이순신 중에서)



하지만 육로로 철수하기에는 유정의 서로군 외에도 중로군의 제독 동일원정기룡, 동로군의 제독 마귀김응서 등 수많은 조명연합군이 산재해 있었기 때문에 이들을 모두 뚫고 지나가기란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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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뇌물로 수군의 공격을 막자

그래서 고니시는 명나라 수군 도독 진린(수로군)에게도 이전에 유정에게 그랬던 것과 같은 말을 하며 뇌물을 주었고, 성격이 포악하고 탐욕스러운 진린은 흔쾌히 그 제안을 수락하였습니다.

명나라 수군 도독 진린(드라마 불멸의이순신 중에서)



지난 전투로 큰 피해를 입었는데 적이 알아서 물러가겠다고 하니 손에 피 묻히지 않고 전쟁을 끝내려 했던 명나라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 없는 조건이었던 것입니다.

애초에 명나라의 조선 파병 목적은 전선을 자국까지 확대하지 않는 선에서 전쟁을 끝내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고니시가 두 명나라 장수를 뇌물로 구워삶았고, 명나라 진영에는 수시로 일본군의 연락선이 드나들 정도였지만, 이러한 때 여느 때처럼 전쟁 준비에 사활을 걸고 있는 장군이 있었으니 바로 이순신이었습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 동상



고니시는 아무리 명나라군이 길을 터준다고 해도 이순신이 있는 한 바닷길을 통해 본국으로 철수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만약, 이순신마저 바닷길을 내준다면 고니시는 아무런 방해 없이 안전하게 본국으로 철수할 수 있었겠지만, 이순신은 단호했습니다.

조선 수군(드라마 불멸의이순신 중에서)



이순신은 고니시가 바친 막대한 뇌물을 단칼에 거절하고 뇌물을 가져온 적의 사자를 차마 죽이지는 못하고 겨우 돌려보냈습니다.

다른 일본군이었어도 이순신은 그들을 고이 돌려보낼 마음이 없었겠지만, 고니시는 그중에서도 반드시 잡아서 죗값을 치러야 하는 조선의 원수였습니다.

고니시 유키나가



그가 임진왜란 발발 전에는 전쟁반대파였다지만 발발 후에는 임진왜란의 1군 선봉장이었으며, 부산진성 전투를 시작으로, 다대포성, 동래성, 상주전투, 탄금대전투, 평양성전투 등을 거치면서 엄청난 피해를 준 인물이었기 때문입니다.

 

* 위에서 언급한 전투는 제 블로그에 모두 게시되어 있으니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다음 시간에 노량해전에 대해 이어서 다루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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