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세계 여러 나라에서 담비 가죽은 모피로 이용되어 매우 귀하게 여겨져왔고, 그것은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발해의 특산품 중 하나였던 담비 가죽은 발해와 교류가 활발했던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며 지배층의 주요 사치품으로 자리잡았습니다.
반응형
하지만 값이 비싼 데다가 공급에 비해 수요가 너무 컸기 때문에 담비 가죽을 걸치고 있다는 것은 고귀한 신분임을 드러내는 표식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919년에는 담비 가죽에 대한 웃지못할 일화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당시 일본에 건너간 발해 사신단 일행은 연회에 참석한 뒤 한 일본인을 보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때는 여름이었기 때문에 날씨가 매우 더웠는데도 그 일본인은 왕족이라는 신분을 과시하기 위해 담비 가죽으로 만들어진 옷 여덟 벌을 걸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발해 사신단은 그 광경을 보고 놀라는 데에 그쳤지만, 동석해있던 다른 일본인들은 그를 매우 부러워했다고 합니다.
다음 시간에는 조선 최대의 금광이자 동양 최대의 금광에 대해 다루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반응형
'역사 > 발해의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발해유민 출신 거란군 vs 발해유민 출신 고려군 (3) | 2023.06.06 |
---|---|
대조영 아들들의 형제의 난 (0) | 2023.05.29 |
발해의 역사가 사라진 이유 (0) | 2022.09.27 |
발해가 우리나라 역사인 이유 (2) | 2021.09.28 |
발해의 또다른 시작! 발해부흥운동 (1) | 2021.07.2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