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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제1차 고당전쟁

제1차 고당전쟁 4편_안시성 전투

by 역사채우기 2021. 9.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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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간에는 안시성 전투 2번째 이야기에 대해 다루겠습니다.

https://youtu.be/E0l21CW4UvA

 

| 안시성 전투

주필산에서 고구려의 구원군 일부를 크게 물리친 당군은 전열을 정비한 후 8월 10일, 안시성 공격을 감행합니다.

주필산 전투에 대해서는 아래 게시물을 참고해주세요!

https://historicalhistory.tistory.com/24

 

제1차 고당전쟁 3편_안시성 전투(1)

https://youtu.be/E0l21CW4UvA 이번 시간에는 지난 시간에 이어서 안시성 전투에 대해 설명해드리겠습니다. | 신성ㆍ건안성 전투 파죽지세로 고구려가 자랑하는 요동의 주요 성들을 함락시킨 당군은 개

historicalhistory.tistory.com

 


안시성의 고구려군은 당나라 황제(당 태종)의 깃발을 보고는 분개하여 욕설을 마구 퍼부었고, 요동도행군 대총관 이세적은 당 태종에게 안시성이 함락되는 날 성 안의 남자들을 모두 생매장할 것을 요청합니다.

이세적 : 안시성 남자들도 주필산 전투의 말갈군처럼 다루어야 합니다.


이 소식은 안시성에도 전해지게 되었고, 안시성의 고구려군은 이 일을 계기로 결사항전의 의지를 더욱더 높이게 되었습니다.
(안시성 군사들 : 어차피 죽을 거 당나라와 열심히 싸우다 죽자!)

 
이후 당나라군은 연일 안시성 공격에 맹공을 퍼부었으나 번번이 고구려군의 수비에 가로막혔고, 평지성이었던 요동성에서 큰 힘을 발휘했던 포차는 안시성과 같은 산성에서 큰 효과를 보지 못했습니다.

안시성 상상도(출처 : kbs 역사스페셜)


안시성 함락이 난관에 봉착한 이때 주필산 전투에서 당나라에 항복한 고연수와 고혜진은 안시성 공격 대신
늙은 성주가 지휘하고 있는 오골성을 공격할 것을 요청합니다.


당 태종은 그대로 시행하려 하였으나 섭시중 장손무기(당 태종의 처남이자 재상)가 다음과 같이 말하며 반대하였습니다.

" 이 원정은 천자(당 태종)가 친정하고 있어 보통의 원정과는 다르니 모험을 강행할 수 없고, 건안성신성에 아직 고구려의 10만 대군이 버티고 있으니 그들이 오골성으로 향하는 우리의 뒤를 친다면 위험해지므로
안시성과 건안성을 차례로 점령한 후 남하하는 것이 만전의 계책입니다. "

 

이 말을 들은 당 태종은 오골성 공격 계획을 철회하였습니다.

안시성을 지나쳐 오골성을 공격하자는 작전

이후 당군은 안시성 공격에 더욱 박차를 가하기 위해 건안성 함락에 실패한 장량의 수군과 장검의 이민족 부대, 이도종(요동도행군 부총관이자 강하왕으로 봉군됨)의 요동도행군을 안시성에 집결시켰습니다.

건안성신성에 약간의 군사만 남겨둔 채 나머지 모든 군대를 안시성으로 모이게 한 것이었습니다.


안시성에서 치열한 공방전이 한창이던 어느 날, 성 안에서 돼지와 닭의 울음소리가 들리자 당 태종은 이세적에게

 

"안시성에서 우리를 기습하기 위해 군사를 배불려 먹이는 것이니 고구려군의 공격에 대비하라"고 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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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밤, 당 태종의 말대로 안시성에서 수백 명의 군사가 줄을 타고 내려오자 대기해있던 당군이 이들을 제압하였고 고구려군은 수십 명의 사망자를 낸 채 퇴각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안시성 공격이 여의치 않자 이도종은 당 태종에게 토산을 쌓아 성을 내려다보며 공격할 것을 요청하였고, 그 의견이 받아들여져 성의 동남쪽에 토산을 쌓게 되었습니다.

 

고구려군 입장에서는 없었던 산이 갑자기 생기고 그 높이가 점점 높아지자 안시성 성벽도 더욱더 높게 쌓으며 방어에 온 힘을 쏟았습니다.

고구려군 : 산을 만들다니 과연 대륙의 기상이군


마침내 연인원 50만 명을 동원하여 60일 동안 쌓은 토산이 완성되었고, 그 높이는 안시성의 성벽보다도 높아서 토산에서 성을 내려다보며 공격할 수 있었습니다.

 

| 토산 전투

이도종은 부복애에게 토산을 지키게 하였는데 어느 날 폭우가 내려 토산의 일부분이 안시성 방향으로 덮치는 일이 발생합니다.
이는 당군이 공성전을 치르지 않고도 곧장 안시성을 향해 진격하여 백병전을 치를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 것이었고, 고구려 역시 당군이 진격해오기 전에 토산을 먼저 점령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누가 먼저 토산에 오르느냐가 이 전쟁의 승패를 가를 요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중요한 순간에 토산을 지켜야 할 부복애는 자리를 비웠고, 그 틈을 노린 고구려군 수백 명이 토산을 재빨리 점령한 후 참호를 파서 이곳을 지키게 되었습니다.

토산을 점령한 고구려군(드라마 연개소문 중에서)

당군이 안시성을 함락시키기 위해 수많은 인력과 시간을 소모해서 힘들게 쌓은 토산은 이때부터 안시성의 든든한 방패가 되어주었기 때문에 당 태종은 분노하여 부복애의 목을 베어 조리돌림 하였고, 토산을 쌓을 것을 건의한 이도종은 죄를 청했으나 개모성과 요동성을 점령한 공로를 참작하여 용서하였습니다.


당군은 이제 안시성을 점령하기 위해 토산을 먼저 공격해야 했으니 막대한 피해를 감내할 수밖에 없었고,
3개월간 안시성을 공격하면서 하루에도 2~3천 명의 군사가 피해를 보았다고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요동 지방에 찬 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당군은 군량이 떨어지고 있는데 안시성은 여전히
난공불락의 위세를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안시성 전투 민족기록화


게다가 신성건안성 그리고 고정의의 고구려군(안시성 구원군 15만 중에서 주필산 전투에서 고연수고혜진의 부대는 와해되었으나 고정의가 이끄는 본군은 아직 건재했습니다)은 당군에게 크나큰 위협이었으니 더 큰 피해를 보기 전에 고구려 정벌 실패를 인정하고 철수해야 했습니다.

당나라 병사들 : 이러다 살수대첩 때처럼 다 죽는 거 아니야?


그런데 이때 설연타(현재의 몽골 고원 지역에 자리 잡은 투르크계 부족)의 다미가한이 당나라의 하남과 하주지방을 공격합니다.

제1차 고당전쟁 당시 설연타의 참전

 

연개소문이 설연타에 사신을 보내 당나라를 공격하도록 공작을 벌인 결과였습니다.
드디어 9월 18일, 당 태종은 고구려에서 철수를 지시하였고, 제1차 고당전쟁고구려의 승리로 돌아가게 됩니다.

 

| 당군의 퇴각

이때 당군이 퇴각할 수 있는 길은 3개였는데 요하 하구를 건너는 길은 건안성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에 가기 어려웠고, 요하 중류를 건너는 길은 고구려군의 게릴라전을 염려하여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남은 길은 요택(요하 하구의 늪지대)을 통과하는 길이었습니다.

늪지대 사진이지만 요택도 이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도하 장비가 있었다면 요택을 건너는 일이 한결 수월했겠지만 고구려 영토에 진입할 때 결의를 다짐하며 
모두 태워버렸기 때문에 당군은 결과적으로 고생을 사서하는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당군은 요택을 건너 철수하는 과정에서 살을 에는 듯한 추위에 8할에 이르는 소와 말이 죽었고, 많은 수의 병사들이 동사하는 큰 피해를 보았습니다.
이 비참한 광경을 보면서 당 태종은 "만일 위징(당나라의 명재상이자 고구려 원정을 반대한 인물)이 있었다면 나에게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났겠는가?"라며 크게 후회 하였습니다.

당 태종 : 단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던 내가 고구려에 지다니

위징(출처 : ko.wikipedia.org)

 

안시성 전투의 여파

당 태종은 중국사에서 손꼽히는 왕이었기 때문에 이를 물리친 고구려와 안시성 전투는 후대에도 두고두고
회자될 정도로 파급력이 엄청났습니다.
훗날 여몽전쟁 후 원종(고려 24대 왕)이 원나라의 쿠빌라이 칸에게 항복하자 크게 기뻐하며

"고려(고구려 장수왕 이후 국명을 고려로 함)는 그 옛날 당 태종도 굴복시키지 못했던 나라였는데 지금 그 나라의 태자가 왔으니 이는 하늘의 뜻이다"라고 말했으며


임진왜란 초기 조선이 수도 한양을 너무 쉽게 점령당하고, 일본군의 진격 속도가 너무 빠르자 명나라에서는 그 옛날 당 태종의 침략을 막아낸 후예가 이렇게 급속도로 무너질 리 없다며 조선과 일본이 명나라를 공격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할 정도였습니다.

명나라 : 이거 둘이서 짜고 우리 치려는 거 아니야?


하지만 안시성 전투를 승리로 이끈 성주의 이름은 알 수 없으며 조선시대에 이르러 야사에서 '양만춘'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안시성 성주로 추정되는 양만춘 영정

 

다음 시간에는 제1차 고당전쟁 5편_안시성 전투 이후의 이야기에 대해 알려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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