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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임진왜란

[임진왜란2] 다대포 첨사 윤흥신과 군민들의 항쟁! 다대포성 전투

by 역사채우기 2021. 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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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 4월 13일,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주도로 일본 제1군 선봉장 고니시 유키나가가 700척의 함대 18,700명의 군사를 이끌고 부산을 침략하면서 임진왜란이 발발하였습니다.

 

그렇게 일본군은 부산진성을 공격하였고, 부산진첨사 정발과 군민들은 무기와 병력의 절대적인 열세 속에서도 결사항전했으나 성이 함락되면서 성주를 포함한 군민 모두가 전멸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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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진성 함락 직후(드라마 징비록 중에서)

 

이렇게 임진왜란의 첫번째 전투인 부산진성 전투는 일본군이 승리했고, 부산진성을 점령한 일본군은 서평포다대포로 진군하며 부산 각지로 세력을 넓히고 있었습니다.

서평포와 다대포로 진군하는 일본군


그 중 다대포 성은 둘레가 약 541m, 높이가 3.9m의 석성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다대포 첨사 윤흥신은 거느리는 병사가 수백에 불과했으나 일본군의 공격에 어느 정도 대비가 되어있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병력의 절대적인 열세 속에서도 부산진성에서 그랬던 것처럼 격렬하게 대항하였고, 기습 작전을 통해 잠시나마 일본군을 물리치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이때 윤흥신의 부하가 사세가 위급하니 일단은 물러난 뒤 후일을 도모할 것을 제안하였으나 윤흥신은 오히려 그 부하를 꾸짖으며 죽기를 각오하고 싸울 뜻을 피력하였습니다.

윤흥신 장군 석상

 


그렇게 전투는 계속되었고, 다대포 군민들은 굳센 의지로 전투에 임했으나 일본군의 공격을 막아내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인 4월 15일, 윤흥신은 혼전 속에 전사하였고, 다대포 성마저 함락되고 말았습니다.

다대포 동헌(다대포 첨사가 정무를 보던 건물)(출처 : ko.wikipedia.org)

 


윤흥신 장군 역시 패하긴 했으나 다대포 전투에서 힘써 싸운 공을 인정받아 부산진첨사 정발과 같이 부산 충렬사에 위패가 모셔져 있으며, 부산진성에 이어서 다대포 성마저 함락시킨 일본군은 동래성으로 향했습니다.

부산의 각 성의 위치

 

 

다음 시간에는 [임진왜란3] 동래성 전투에 대해 다루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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