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일, 도원수 김명원과 부원수 신각이 지키는 한강 방어선과 유도대장 이양원이 지키는 한양 도성은 겨우 소수의 군사가 헤엄쳐오는 것을 겁먹고 도망치면서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일본군에게 넘겨주었습니다.
한강 전투에 대해서는 아래 게시물을 참고해주세요.
https://historicalhistory.tistory.com/50
5월 3일, 한양이 적의 수중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은 선조는 평양으로 피난 가면서 도원수 김명원에게 패전의 책임을 묻는 대신 임진강을 방어하라는 임무를 맡겼습니다.
하지만 같이 있어야 할 부원수 신각은 김명원을 따르지 않고 유도대장 이양원과 함께 양주로 이동했습니다.
이곳에서 신각은 함경도 남병사 이혼(세자 광해군과는 동명이인)이 데리고 온 군사와 합류한 후 흩어진 군사들을 모아 군을 재정비하였고 머지않아 일본군이 파주에서 양주 방면으로 오고 있다는 첩보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신각은 파주 광탄면에서 양주 광적면으로 이어지는 해유령(게너미 고개)에 군사를 매복시킨 뒤 전투 준비에 만전을 기하고 있었습니다.
5월 16일, 예상대로 약탈은 마친 일본군 1개 부대가 해유령으로 오고 있었습니다.
일본군은 그동안 싸우기도 전에 알아서 무너지는 조선군을 여러 차례 보았고, 수도까지 손쉽게 점령했기 때문에 방심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신각의 지휘하에 매복 중이던 조선군이 일제히 일본군을 기습했고, 생각지 못한 공격을 받은 일본군은 속수무책으로 당했습니다.
이 전투에서 조선군은 일본군 70명을 베는 전과를 거두었으며, 이순신의 옥포 해전에 이어 육지에서도 첫 승리를 기록하였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이 전투에 대해 '왜적이 우리나라를 침범한 뒤로 처음 이런 승전이 있었으므로 원근에서 듣고 의기가 솟구쳐 올랐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옥포 해전에 대해서는 아래 게시물을 참고해주세요.
https://historicalhistory.tistory.com/51
한편, 임진강에 있던 도원수 김명원은 선조에게 신각이 자신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마음대로 근무지를 이탈해 이양원을 따른다는 핑계로 도망쳤다며 처벌할 것을 청하는 장계를 올렸습니다.
그러자 보고를 받은 조선 조정에서는 우의정 유홍의 의견에 따라 명령 불복종의 죄를 물어 신각의 참형이 결정되었고, 선전관을 파견하여 신각을 참수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런데 선전관을 보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신각이 보낸 승전보가 도착하면서 선조는 급히 신각의 참형을 중지하라는 선전관을 다시 파견하였습니다.
이때 해유령 전투에서 승리한 신각과 이양원은 대탄(지금의 경기도 연천)을 방어하고, 함경도 남병사 이혼은 일본군이 함경도로 진출하는 것을 막으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대탄에 선조가 파견한 선전관이 도착했고, 신각과 이양원은 승전을 포상하러 왔다는 마음에 들떠있었으나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됩니다.
임진왜란 육전의 첫 승리를 지휘한 장군에게 조사도 없이 참형이라니, 그것도 부원수를!
그렇게 부원수 신각은 억울한 죽음을 맞이했고, 그 소식을 들은 백성들은 신각이 청렴하고 부지런했는데 죄 없이 죽으니 매우 원통하게 여겼습니다.
얼마 후 신각의 참형을 중지하라는 선전관이 왔으나 이미 때는 늦었고 신각은 참수된 후였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때 신각이 죽지 않았다면 이후 더 많은 공을 세울 수도 있었을텐데 참 아쉬운 생각이 듭니다.
다음 시간에는 [임진왜란11] 임진강 전투에 대해 다루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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