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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임진왜란

[임진왜란11] 거듭된 실책! 임진강 전투

by 역사채우기 2021. 1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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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DZsB1Pm05zI

일본군은 1군 고니시 유키나가 부대가 평양으로(평안도로), 3군 구로다 나가마사황해도로, 2군 가토 기요마사함경도로, 4군 모리 요시나리강원도로 각각 진군하기로 정했고, 8군을 이끄는 우키타 히데이에가 총대장으로 한양에 주둔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일본군은 바다에서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수군에게 패했고(옥포해전, 적진포해전, 합포해전), 육지에서는 신각 장군에게 해유령 전투에서 일격을 당하긴 했으나 여전히 건재했으며 북상은 계속되었습니다.

 

 

옥포해전에 대해서는 아래 게시물을 참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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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historicalhistory.tistory.com/51

 

[임진왜란9] 조선군의 첫 승리! 옥포 해전

https://youtu.be/1IPxGjlc8kI | 이순신은 누구인가? 이순신은 1년 전만 해도 정읍 현감(종6품)으로 근무하며 일개 수령에 지나지 않았으나 전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류성룡의 추천으로 품계를 몇 단계

historicalhistory.tistory.com

 

해유령 전투에 대해서는 아래 게시물을 참고해주세요.

https://historicalhistory.tistory.com/52

 

[임진왜란10] 조선 육군의 첫 승리! 해유령 전투

5월 2일, 도원수 김명원과 부원수 신각이 지키는 한강 방어선과 유도대장 이양원이 지키는 한양 도성은 겨우 소수의 군사가 헤엄쳐오는 것을 겁먹고 도망치면서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

historicalhistory.tistory.com

 


그렇게 일본군은 2군 가토 기요마사 부대가 선발대로 북상하다 임진강에 다다랐습니다.
일본군은 강을 건너려했으나 물살이 급한데다 조선군이 배를 모두 강 건너편으로 빼놓은 뒤였기 때문에 양측은 서로 대치하게 되었습니다.

임진강 지도(출처 : commons.wikimedia.org)


한편, 임진강을 방어하는 조선군은 3개 부대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도원수 김명원을 필두로 경기감사 권징, 조방장 유극량, 방어사 신할 등으로 이루어진 첫번째 부대가 7천여 명, 제도도순찰사 한응인이 이끄는 서계토병(압록강 근방) 부대가 1천여 명, 유도대장 이양원과 순변사 이일 등이 이끄는 부대가 5천여 명을 이끌고 있었습니다.

이때 조선 조정에서는 임진강에 다다른 일본군의 숫자가 아군에 비해 적다고 판단하여 조선군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을 아니꼽게 보고 일선 지휘관을 책망하며 속히 전투에 임하라는 어명이 내려왔습니다.
그래서 조선군은 어쩔 수 없이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일본군이 진을 비우고 철수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루는 왜적이 강 언덕에 지은 여막을 불태우고 장막을 헐고 군기를 거두어 싣고 물러나 도망가는 모양을 보이며 우리 군사들을 유인하는 것이었다. 방어사 신할은 평소 행동이 가볍고 날카로우나 꾀가 없어서 왜적이 정말로 도망하는 것으로 생각하여 강을 건너 뒤쫓아 가서 짓밟아버리려 하였다. 경기감사 권징도 신할과 합세하였기 때문에 김명원은 이를 금할 수가 없었다. - 징비록

 

그래도 일본군이 조선군을 유인하기 위해 거짓으로 후퇴할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에 도원수 김명원과 조방장 유극량, 그리고 한응인의 수하에 있던 서계토병 군사들은 돌격을 주저했으나 한응인강변군사들을 베어버리는 일이 발생합니다.

한응인(드라마 징비록 중에서)


그러자 어쩔 수 없이 조선군은 공격에 나설 수 밖에 없었고, 조방장 유극량은 다음과 같이 말하며 강을 건넙니다.

별장 유극량은 나이도 많고 군사에도 익숙하였으므로 결코 가볍게 진격해서는 안 된다고 강하게 말하자 방어사 신할이 그를 베려고 하였다. 그러자 유극량이 말하기를 "내가 어려서부터 군사가 되어 싸움에 따라다녔으니 어찌 죽음을 피할 생각을 하겠습니까? 그렇게 말씀드리는 까닭은 나랏일을 그르칠까 염려해서입니다."라고 말하고 화를 내며 나와서는 자기에게 소속된 군사를 거느리고 먼저 강을 건너갔다. - 징비록

다시 말해 유극량은 적의 함정에 빠져들 것을 염려했고, 죽을 줄 알면서도 강을 건넌 것입니다.

 

 

이때 도원수 김명원의 휘하에 있던 유극량이 제도도순찰사 한응인의 명령을 들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조선 조정에서 지휘권을 김명원과 한응인 이렇게 둘로 나누어 버렸고, 이전에 해유령 전투를 승리로 이끈 신각을 죽게 한 책임이 김명원에게 있었기 때문에 김명원이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해유령 전투 때 김명원이 좀 더 신중했더라면... 조선조정은 이래도 잘못 저래도 잘못

 

 

강을 건넌 조선군은 일부 남아있던 일본군을 물리치긴 했으나 숨어있던 가토 기요마사의 기습에 신할유극량 등이 전사했고, 후퇴하던 조선군은 강물에 빠져 죽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러자 아직 강을 건너지 않은 조선군은 그 광경을 보고 사기가 떨어졌고, 검찰사 박충간이 도망가는 것을 보고 누군가

 

"도원수(김명원)가 도망간다"

 

라고 외치자 남은 군사들은 진짜로 김명원이 도망치는 줄 알고 각자 제 목숨 부지하기에 바빴고, 뿔뿔이 흩어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스스로 무너지는 조선군...



이후 가토 기요마사의 일본 제2군은 5월 27일, 조선군이 임진강을 건너올 때 탄 배를 타고 임진강을 건넜으며, 임진강 전투는 조선 조정이 큰 기대를 걸었지만, 지휘 계통의 문제와 조선 조정의 정보력과 판단력 문제로 허무하게 패배했습니다.

가토 기요마사 : 배를 굳이 만들 필요 없다. 뺏으면 된다

가토 기요마사

 


도원수 김명원과 제도도순찰사 한응인은 살아남아 선조가 있는 평양 행재소로 돌아갔고, 전투 패배의 원인이 조선 조정에도 일부 있었기 때문에 죄를 묻지 않았습니다.

선조의 파천(출처 : 역사저널 그날)

 

 

다음 시간에는 곽재우가 이끄는 의병이 일본군과 맞선 정암진 전투에 대해 다루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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