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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임진왜란

[임진왜란 16] 율포해전과 제해권을 넓혀 나가는 조선 수군

by 역사채우기 2021. 10.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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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5일~6월 6일까지 조선 수군은 당항포에서 일본 수군을 맞아 26척을 격침시키는 승리를 거두었지만, 6일에는 비가 내려 시야를 관측하기 힘들었으므로 당포(경남 통영시 산양읍 삼덕리)로 이동하여 휴식을 취했습니다.


그날 저녁, 조선 수군은 마루장(경남 고성군 동해면)으로 이동했고, 다음 날 아침(7일) 척후선(정찰선)을 보내 인근의 적선을 수색한 결과, 영등포에 있던 척후선이 율포(경남 거제시 장목면 율촌리)에서 부산으로 이동 중인 적 대선 5척, 중선 2척을 발견했다고 전했습니다.

율포 위치(출처 : 국토정보플랫폼 국토정보맵)


6월 7일 정오쯤, 조선 수군은 영등포를 거쳐 역풍을 딛고 율포 앞바다까지 추격하자, 당황한 일본 수군은 싸울 의지를 잃고 그간 노획했던 물건들을 모두 바다에 던져버리고 도주하기 시작했습니다.

* 일본 수군의 입장에서 조선 수군의 숫자가 훨씬 많고, 그동안 조선 수군의 위엄을 전해 들었을 것이므로 싸우지도 않고 도망가는 것이 그렇게 잘못된 판단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전투는 우후 이몽구가 적 대선 1척을 나포하고 1척을 불태우는 것으로 시작되어 우척후장 김완(사도첨사)과 좌척후장 정운(녹도만호), 중위장 어영담(광양현감) 등이 힘을 합해 적선을 격침시키는데 주력한 결과 적선 5척을 나포 또는 격침시켰습니다.

우후 : 절도사를 보좌하며 절도사가 없을 시에는 임무 대행 역할도 수행했던 관직


그리고 여도권관 김인영과 소비포권관 이영남은 적진에 뛰어들어 남은 왜병의 목을 베면서 전투는 또 한 번 조선 수군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단병접전에도 강한 조선 수군

이영남(불멸의 이순신 중에서)



이 전투에서 조선 수군은 적선 2척 나포하였고(사로잡음), 중선 5척을 불태우고, 일본 수군 36명의 목을 베었으며, 적장은 자결하였습니다.

* 일설에는 자결한 적장이 구루지마 미치유키라고 하지만, 이미 당포해전에서 전사했다는 것이 정설이므로 율포해전에서 죽은 적장이 누구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이렇게 이순신과 조선 수군은 2차 출정에 나서 사천, 당포, 당항포, 율포에서 4차례 모두 승리를 거두었고, 적선 67척 격침 또는 나포하는 성과를 이루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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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 2차 출정으로 해전이 벌어진 곳(지도 출처 : 국토정보플랫폼 국토정보맵)



또한, 2차 출정을 총지휘한 이순신은 전공을 인정받아 자헌대부(정2품)의 벼슬로 승직되었으며, 전라우수사 이억기와 경상우수사 원균은 가선대부(종2품)로 승직되었습니다.
* 참고로 전라좌수사, 경상우수사, 전라우수사 등의 수군절도사 직위는 정3품입니다.

2차 출정에서 조선 수군은 강한 전투력과 전라우수사 이억기의 합류, 그리고 이순신의 돌격 전함 거북선이 적진을 종횡무진으로 뒤흔들 수 있었기 때문에 승리할 수 있었으며, 이순신이 전투 전과 후에 사방으로 척후선을 보내면서 꼼꼼히 정찰했던 것 또한 승리의 주요 원인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승리의 원동력에는 이순신의 힘이 가장 컸다


이 무렵, 육지에서는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의 육군이 모여 한양 도성을 탈환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는데... 

 

 


다음 시간에는 다시 육지로 넘어가서 용인 전투에 대해 다루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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