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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임진왜란

[임진왜란28] 한산도 대첩! 이보다 더 완벽할 순 없다! 한산도에 펼쳐진 학의 날개

by 역사채우기 2021. 1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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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htWDDIt-qD8

 

 

| 한산도 대첩

7월 8일, 조선 수군은 5~6척의 판옥선이 *견내량으로 진격하여 정박해있던 일본 수군을 향해 화포를 발사했습니다.

* 견내량 : 경남 거제시 사등면 덕호리와 경남 통영시 용남면 장평리 사이의 해협

견내량과 한산도의 위치(출처 : 국토정보플랫폼 국토정보맵)

 


소수의 전선으로 피해를 줌으로써 일본군을 자극하기엔 충분했고, 전공을 세울 욕심에 들떠있던 와키자카는 큰 의심 없이 미끼를 물어 조선 수군을 향해 빠른 속도로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의 함대는 첨저선이었으므로 평저선인 조선의 판옥선에 비해 속도가 매우 빨랐기 때문에 퇴각하는 판옥선에 빈틈을 주지 않고 따라붙은 후 조총을 쏘며 싸움을 걸었습니다.

 

* 첨저선은 선체의 바닥이 뾰족한 선박으로 저항을 적게 받아 속력이 빠르나 선회하기 어렵고, 화포를 발사할 때 반동을 흡수하기 어려워 화포를 많이 장착할 수 없습니다.
반면에, 평저선은 선체의 바닥이 평평하여 저항을 많이 받아 속력이 느리지만 선회가 자유롭고, 화포를 많이 장착해도 안정적으로 전투에 임할 수 있습니다. 

 

일본 수군의 주력전함 아다케부네(왼쪽)와 세키부네(오른쪽)(영화 명량 중에서)

 


어느덧 일본군은 한산도 앞바다까지 추격해왔고 미끼로 투입되었던 조선 수군은 작전 해역으로 진입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이순신이 정해놓은 계획대로 일본군이 움직여준 것이었습니다.

 

7월 6일에 이순신이억기노량에서 회합하였는데, 원균은 파선 7척을 수리하느라 먼저 와서 정박하고 있었다. 적선 70여 척이 영등포에서 견내량으로 옮겨 정박하였다는 것을 들었다. (김천손)

8일에 수군이 바다 가운데 이르니, 왜적들이 아군이 강성한 것을 보고 노를 재촉하여 돌아가자 모든 군사가 추격하여 가보니, 적선 70여 척이 내양에 벌여 진을 치고 있는데 지세가 협착한 데다가 험악한 섬들도 많아 배를 운항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아군이 진격하기도 하고 퇴각하기도 하면서 그들을 유인하니, 왜적들이 과연 총출동하여 추격하기에 한산도 앞바다로 끌어냈다.
[선조실록]

 

 

일본군을 유인했던 판옥선이 3개 부대로 나뉘어있던 조선 수군에 재빠르게 합류하여 *학익진을 펼치자 일본군은 조선군의 포위망에 완전히 갇혀버렸습니다.
* 학익진 : 학이 날개를 편 모양으로 진을 펼쳐 적을 포위 섬멸하는 전술

 

학익진 전법(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중에서)



그 순간! 조류도 조선 수군에 유리한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고, 이순신은 기다렸다는 듯이 공격 명령을 내렸습니다.

 

방포하라! 적선을 모두 분멸하라!

그러자 조선의 연합함대는 일제히 지자총통, 현자총통 등의 각종 화포를 발사하며 사정없이 공격하니 일본 수군은 제대로 응전조차 하지 못하고 목숨을 걸고 전장을 도망가기에 급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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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히 포위된 채 포화를 두들겨맞는 일본 수군(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중에서)

 


계속된 화포 공격에 수많은 적선이 격침되었고 불화살에 맞아 죽거나 바다에 빠지는 자가 부지기수였습니다.
거기다 아무리 가신들이 보호한다지만 지휘관이라고 해서 화살과 화포 공격에서 안전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와키자카도 갑옷에 화살을 맞는 부상을 당했으며, 와키자카 사헤에와타나베 시치에몬 등의 가신도 전사하였습니다. 



일본군이 조선 수군에 접근도 못 해보고 퇴각하니 판옥선이 추격을 시작했고, 그 선두에는 공포의 대상이었던 거북선이 있었습니다.

거북선의 활약(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중에서)


거북선을 보고 멀리서 전투를 관망하던 대선 1척, 중선 7척, 소선 6척으로 이루어진 일본 수군 14척은 전의를 완전히 상실하여 김해 방면으로 퇴각하였습니다.


이후 와키자카는 어떻게든 전장에서 벗어나기 위해 대장선을 버리고 다른 배로 갈아타 한산도 바다에서 벗어나 김해로 퇴각하는 데는 성공하였으나 살아남은 자는 200여 명에 불과했습니다.

거기다 한산도 대첩 직전 73척을 보유했었지만 멀찌감치서 전투를 관망하다 퇴각한 14척을 제외한 59척은 모두 격침되거나 조선 수군에 나포되었습니다.

 

* 순천부사(중위장) 권준이 층각대선 1척을 나포한 것을 포함해 총 12척을 나포하였고, 47척은 격침되었습니다.

 

격침된 적선(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중에서)

 

반면에 조선 수군은 전사자 3명 부상자 10명으로 일본군에서 수천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에 비하면 피해가 미미한 수준이었고, 조선 수군의 완벽한 승리였습니다.

 

아군이 죽 벌여서 학익진을 펼쳐 깃발을 휘날리고 북을 치며 일시에 나란히 진격하여, 크고 작은 총통들을 연속적으로 쏘아대어 먼저 적선 3척을 쳐부수니 왜적들이 사기가 꺾이어 조금 퇴각하였다. 그러자 여러 장수와 군졸들이 환호성을 지르면서 발을 구르고 뛰었다.

예기(날카롭고 강한 기세)를 이용하여 왜적들을 무찌르고 화살과 탄환을 번갈아 발사하여 적선 63척을 불살라버리니, 잔여 왜적 4백여 명은 배를 버리고 육지로 올라가 달아났다.
[선조실록]

 

7월 7일 카라시마(거제) 앞쪽으로 배를 밀어 나아가니 마침 해협 안에 판옥선 4~5척이 있는 것을 보고 조총을 쏘며 반각 정도 싸움을 걸었다. 판옥선이 슬금슬금 뒤로 빼는 것을 빈틈을 주지 않고 공격하여서 3리 정도 쫓아갔을 무렵이었다. 판옥선이 막 해협을 지나 넓은 곳으로 나아갔다.

한 번에 키를 돌려 잡고는 큰 배를 양쪽으로 벌려 세워 아군의 배를 둘러쌌다. 이는 유인하여 무찌르는 계책임이 분명했다. 

아군의 배에서 사상자가 많이 나왔다. 적은 큰 배(판옥선), 아군은 작은 배이므로 당해내기 힘들어서 원래 온 해협으로 물러나려고 했으나 적의 판옥선이 밀어붙여 와서는 아군 배에 호로쿠비야(화약 무기)를 던져넣어 곧 배가 불타올랐다. 와키자카의 가신인 와키자카 사헤에, 와타나베 시치에몬을 시작으로 이름 있는 자 여럿이 전사했다.
- [와키자카기]

 

 

위의 두 사료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이순신은 전공을 부풀리지 않았고, 적장인 와키자카 역시 자신의 패전을 축소하지 않고 그대로 기록해두었기 때문에 한산도 대첩 양측의 교차검증이 제대로 이루어진 전투이기도 합니다.

 

 

 

다음 시간에 한산도 대첩의 결과에 대해 다루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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