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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임진왜란

[임진왜란31] 부산 인근까지 다다른 조선 수군! 이순신의 3차 출정 성과

by 역사채우기 2021. 1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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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신의 3차 출정 성과

7월 6일에 다시 한번 연합함대를 결성하여 3차 출정에 나선 조선 수군은 7월 8일에 한산도에서, 7월 10일에 안골포에서 연이어 승리를 거두며 2번의 해전을 통해 적선 총 70여 척격침시키고, 12척나포하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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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도 대첩과 안골포 해전이 벌어진 장소(출처 : 국토정보플랫폼 국토정보맵)

 

 

이로써 조선 수군은 부산 인근까지 제해권을 넓혔고, 일본 수군은 가장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인 부산조차도 머지않아 공격받을 수 있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 공으로 전투를 총괄한 이순신 정헌대부(정2품)으로, 전라우수사 이억기와 경상우수사 원균 가의대부(종2품)으로 승진하였습니다.

* 7척밖에 없던 원균에게 25척을 이끈 이억기와 같은 포상을 한 점은 아쉽습니다.

 

 

 

| 와키자카 야스하루의 탈출 시도

한편, 한산도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적장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군선, 군사, 군량 모두 거의 잃어버린 상태에서 병사들과 함께 솔잎미역을 먹으며 인근의 조선군이 철수하기를 기다렸습니다.

미역을 식량으로 쓴 와키자카(출처 : ko.wikipedia.org)

 

 

얼마 지나지 않아 한산도 대첩의 소식을 듣고 구키 요시타카가토 요시아키의 함대가 오자 조선 수군이 잠시 물러났고, 이 기회를 살려 배의 잔해를 이용해 뗏목을 만들어 섬에서 탈출하려 했으나 곧바로 추격해온 조선 수군에 의해 와키자카의 군사는 또 피해를 입었습니다.

와키자카가 만든 뗏목은 훨씬 부실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와키자카는 도망가는 와중에 일부 군사들이 죽긴 했지만, 끝내 김해로 들어가면서 탈출에는 성공합니다.  

 

카라시마(거제)의 작은 섬에 올라와 있던 나카츠카사와 그 가신들은 13일간 솔잎과 미역을 먹으며 침몰한 배의 잔재를 모아 뗏목을 만들어서 육지로 올라가려 하였다. 판옥선이 물러나는 틈을 엿보고 있었는데, 카라시마 밖에 일본 수군이 몰려오고 있다는 것을 듣고(안골포 해전에 참전한 구키 요시타카와 가토 요시아키) 판옥선(조선 수군)이 갑자기 물러났다.

이를 틈 타서 5~6명씩 뗏목에 타고 그 섬으로부터 육지로 오던 중 판옥선이 다시 방향을 돌려 우리(와키자카와 패잔병)를 공격해왔다.
남은 자는 200여 명 남짓이었다. 겨우 호랑이 아가리를 벗어나 목숨을 건져 김해로 돌아왔다.
- [와키자카기]

 

 

그리고 일본군의 전라도 진출이 좌절되면서 선조를 협박하며 평양까지 북진했던 고니시 유키나가가 군량을 제때 보급받지 못해 더 이상 진군하지 못하자 조선 조정은 일본군의 세력이 위축되었다고 판단하여 평양성을 탈환할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다음 시간에는 2차 평양성 전투에 대해 다루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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