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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임진왜란

[임진왜란33] 조선의 힘으로 평양성을 탈환하라! 제3차 평양성 전투

by 역사채우기 2021. 1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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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군은 육지와 바다에서 일본군을 모두 막아내면서 전라도 수호성공하였고, 요동 부총병 조승훈명나라 지원군까지 왔으니 이번 기회에 조선 조정은 평양성을 탈환하여 전황을 완전히 뒤집으려 했으나 순안군수 황원의 오인 보고와 명나라 장군들의 공명심 때문에 고니시 유키나가의 계략에 말려든 조명연합군은 첫 번째 패전을 기록하였습니다.

일본의 [회본태합기]에 수록된 제2차 평양성 전투



한편, 제2차 평양성 전투에서 겨우 목숨만 건진 조승훈요동으로 돌아가 버렸고, 조선 조정은 평양에 있는 고니시의 군대가 지난 전투에서 퇴각하는 조명연합군을 추격하지 않았던 이유가 여러 차례의 전투로 인해 전력이 약화되었기 때문이라 판단하여 그동안 모은 병력을 있는 대로 끌어모아 조선군만의 힘으로 평양성을 다시 탈환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임중량, 윤봉, 그리고 차은진, 차은로 형제 등의 의병이 합류하면서 그 규모만 해도 순변사 이일5천, 순찰사 이원익5천, 조방장 김응서와 별장 박명현1만 병사를 각각 지휘하게 되면서 총 병력2만여 명에 달했습니다.


8월 1일, 조선군은 세 길로 나누어 이일이 동쪽에서, 이원익이 북쪽에서, 김응서가 서쪽에서 각각 평양성을 공격하였습니다.

평양성의 구조(출처 : 역사스페셜)



전투 초반 평양성 보통문에서 일본군 50여 명이 나와 조총을 쏘며 위협하자 조선군이 활로 20여 명을 쏘아 죽이면서 사기가 오른 조선군은 평양성 성문을 돌파하려 하였습니다. 

평양성 보통문(출처 : ko.wikipedia.org)



하지만 성곽에서 조총 사격이 이어졌고, 곧이어 성문을 열고 나온 일본군의 대대적인 공격에 백병전이 전개되면서 일진일퇴의 양상으로 접어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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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차 평양성 전투(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중에서)



전투가 지속되면서 백병전에 능한 일본군에게 조선군이 밀리자 이일이원익이 이끄는 조선군은 피해를 줄이기 위해 퇴각했는데 평양성 서쪽을 맡은 김응서 진영에는 군령이 전달되지 않아 김응서의 병력이 적진에 돌격하는 참사가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하필이면 제일 많은 군사를 지휘한 김응서에게 군령이 전달되지 않았을까

 


결국 김응서의 군대는 단독으로 공격하다 큰 피해만 보고 평양성은 함락시키지 못한 채 뒤늦게 퇴각하면서 제3차 평양성 전투도 조선의 패배로 끝났습니다.


그래도 평양성 탈환에 미련이 남은 조선 조정은 같은 해 10월에는 관군과 *승병이 연합하고, 11월에는 승병만으로 평양성을 다시 탈환할 계획을 세웠으나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습니다.

 

*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억압했던 조선 사회였으나 승려들이 외적에 맞서 적극적으로 싸우려 했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함경도로 진출하려는 가토 기요마사와 함경북도 병마절도사 한극함 사이에서 벌어진 해정창 전투에 대해 다루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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