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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임진왜란

[임진왜란32] 조명연합군의 첫 전투! 제2차 평양성 전투

by 역사채우기 2021. 1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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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군의 전라도 진출 실패

육지에서는 일본 제6군 고바야카와 다카카게의 군대가 전라도 점령에 실패했고, 바다에서는 와키자카 야스하루한산도에서, 구키 요시타카와 가토 요시아키가 안골포에서 패퇴하면서 일본군의 전라도 진출은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임진왜란 시기 일본군의 전라도 공격에 대한 내용은 아래 링크를 참고해주세요.

https://historicalhistory.tistory.com/category/%EC%9E%84%EC%A7%84%EC%99%9C%EB%9E%80/%EC%9D%BC%EB%B3%B8%EA%B5%B0%EC%9D%98%20%EC%A0%84%EB%9D%BC%EB%8F%84%20%EA%B3%B5%EA%B2%A9

 


이로써 평양까지 진출한 고니시 유키나가의 일본 제1군은 육지에서는 관군과 의병의 연합에 막혀 보급이 제때 이루어지지 못했고, 바다에서는 이순신의 활약에 부산을 제외한 제해권을 내주게 되어 서해로 진출하지 못했기 때문에 역시 보급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평양에서 발목이 묶인 고니시 유키나가

 

 

| 명나라의 참전

게다가 조선 조정은 여러 차례 명나라에 사신을 파견하여 군사를 요청하였고, 명나라의 병부상서였던 석성 역시 조선에 지원군 파병에 대한 의견을 피력한 결과 명나라 황제 *만력제는 요동 부총병 조승훈에게 군사 3천 명을 주어 조선으로 파견하였습니다.
전쟁 준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남의 힘을 빌려야 하는 조선

 

* 만력제 : 명나라 13대 황제로 만력태정이라 할 만큼 정사를 멀리했으나 임진왜란 시기 조선을 돕는 일에는 적극적이었습니다.

만력제



1592년 7월, 조승훈의 3천 군사가 압록강을 넘어 순안군(현재의 평양시 순안구역)에 있던 도원수 김명원의 3천 군사와 합류하였고, 때마침 고니시의 제1군을 지원하던 구로다 나가마사의 제3군이 황해도 공격을 위해 평양성을 빠져나갔습니다.

그러자 순안군수 황원은 고니시가 주력 부대를 철수시킨 것으로 잘못 보고하였고, 이를 믿은 조명연합군은 평양성을 탈환할 절호의 기회로 판단하였습니다.

 


| 제2차 평양성 전투

7월 17일, 도원수 김명원과 요동 부총병 조승훈의 조명연합군이 평양성으로 도착했는데 *평양성 외성의 성문이 활짝 열려 있었습니다.

* 평양성외성, 중성, 내성, 북성 이렇게 4중 성벽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평양성의 4중 성벽(출처 : 역사스페셜)

 

 

일본군이 조명연합군을 성내로 유인하여 몰살시킬 계획을 세웠던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조승훈은 일본군을 가벼이 여겼고, 명군의 선봉장 사유는 전공을 세우고 싶은 욕심에 성 내부로 정찰병도 보내지 않고 입성하였고, 뒤이어 조명연합군 본대도 입성하였습니다.

조승훈(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중에서)

 


이렇게 조명연합군은 일본군이 쳐놓은 에 완전히 걸려들고 말았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길 양편에 매복해있던 일본군은 조명연합군이 사정권에 들어오자 거침없이 조총을 쏘아댔고, 방심하고 있던 조명연합군은 갑작스러운 기습에 피해가 속출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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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평양성 전투(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중에서)

 


그래도 조명연합군은 혼란스런 와중에 열심히 싸웠으나 명군 선봉장 사유가 일본군에게 집중 사격을 받아 전사한 것을 시작으로 유격장 대조변과 부장 천총, 장국충 등의 장수까지 전사하자 조승훈퇴각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 전투로 조선군은 도원수 김명원과 순안군수 황원을 제외한 대다수의 병력을 잃었고, 명군은 위에 열거한 장수들이 전사한데다 조승훈도 부상을 당한 채 겨우 수십 명만 살아서 요동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이렇게 조명연합군의 첫 전투인 제2차 평양성 전투는 패배로 기록되었습니다.


이를 두고 명나라 측에서는 그동안의 전황에 대해 고당전쟁 당시 당 태종의 침입을 물리쳤으며(고구려), 여몽전쟁 때는 40년 넘게 몽골에 항전했던 나라(고려)의 후손(조선)이 이렇게 쉽게 무너진 것은 말이 안 되며, 순안군수 황원이 오인 보고한 것이 조선과 일본이 손을 잡고 명나라를 공격하려 한 것이 아니냐는 후폭풍까지 돌 정도였습니다. 
고구려와 고려의 군사력에 비한다면 조선의 군사력은...

 

 

당 태종의 침입을 막아낸 고구려에 대한 이야기는 아래 링크의 제1차 고당전쟁을 참고해주세요.

https://historicalhistory.tistory.com/category/%EA%B3%A0%EA%B5%AC%EB%A0%A4%EC%9D%98%20%EC%97%AD%EC%82%AC/%EC%A0%9C1%EC%B0%A8%20%EA%B3%A0%EB%8B%B9%EC%A0%84%EC%9F%81



하지만 조선 조정은 명나라에 사신을 보내 이를 해명한 뒤 독자적으로 평양성을 탈환할 계획을 다시 세우는데...



다음 시간에 제3차 평양성 전투에 대해 다루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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