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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임진왜란

[임진왜란36] 가토 기요마사의 여진족 공격과 지옥에 빠진 함경도

by 역사채우기 2021. 1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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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7일~18일에 벌어진 해정창 전투에서 한극함이 이끄는 6진의 정예병력과 함경도 남병사 이영의 군대가 궤멸되면서 함경도를 수비할 병력은 소수에 불과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함경북도 회령에서 국경인이 반란을 일으켜 임해군과 순화군을 가토 기요마사에게 넘기면서 함경도 전역가토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포로로 붙잡힌 임해군(오른쪽)과 순화군(왼쪽)(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중에서)



이후 가토는 국경인과 국세필정말수 등에게 일부 지역의 통치를 맡긴 뒤 두만강을 넘어 여진족을 공격하려 했습니다.

 


| 여진족은 누구인가?

여진족은 삼국시대와 남북국시대 때 고구려와 발해에 각각 복속되어 있었고, 발해가 멸망한 뒤에는 거란족에 복속되어 있다가 거란족이 세운 나라인 요나라가 멸망할 때쯤 금나라를 세워 중국의 절반을 차지한 일이 있었습니다.

금나라를 건국하며 여진족이 가장 강성했던 시기



하지만 몽골족에게 금나라가 멸망하면서 다시 복속되었고, 몽골족이 세운 원나라가 멸망한 후에는 명나라조선, 이 두 나라의 영향력 아래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임진왜란 당시의 여진족은 해서여진, 건주여진, 야인여진으로 분류되었고, 그 밑에 수많은 부족이 나뉘어서 살아가고 있었으나 그들의 전투력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고, *누르하치를 중심으로 여진족이 명나라와 조선의 국방력이 약화된 틈을 타 세력을 넓히고 있었습니다.

* 누르하치 : 임진왜란 이후 1616년에 후금을 건국하면서 후금의 초대 황제가 되었으며, 임진왜란 때는 조선에 원군 파병을 제안하기도 하였습니다.

건주여진, 해서여진, 야인여진으로 나뉘어진 여진족(출처 : 역사저널 그날)

 

 


| 가토 기요마사가 여진족을 공격한 이유

이런 여진족가토 기요마사는 공격하려고 했던 것이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그 중 첫 번째는 가토와 경쟁 상대였던 고니시가 평양에서 진군이 멈춘 틈을 노려 자신이 만주와 연해주 지방까지 진출하여 자신의 영지를 넓히고, 권력을 높이기 위해 개인적인 욕심으로 그랬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설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쟁을 읽으킨 까닭이 정명가도(征明假道), 즉, 조선의 길을 빌려 명나라를 공격하는 데에 있었으니 그의 *최종 목표는 조선이 아니었기 때문에 조선과 여진족을 일본에 복속시킨 후 명나라를 공격한다면 좀더 수월할 것이라는 판단에서 그랬다는 것입니다.

*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최종 목표는 조선->명나라->인도까지 일본의 발아래에 두는 것이었습니다.

허황된 꿈을 꾸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마지막으로, 세 번째 설은 조선과 여진족 사이에는 크고 작은 분쟁이 잦았기 때문에 가토가 함경도를 영지로 받는다고 해도 여진족이 침입해올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이후의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예방 전쟁을 했다는 것입니다.

 


| 가토 기요마사의 여진족 공격

이렇게 가토는 여진족 공격을 계획했고, 조선 백성들을 향도(길을 인도하는 사람) 또는 군사로 징집하려 하자 여진족에 원한이 많았던 함경도 백성 상당수가 모집에 응했다고 합니다.

이후 가토는 두만강을 건너 여진족의 부락 중 하나인 노토 부락을 공격했습니다.

초반에는 일본군이 선제공격을 감행한 이점과 신무기(조총)의 사용 등으로 성과를 올렸으나 곧바로 노토 부락의 여진족이 다수의 기병을 이끌고 일본군을 포위 공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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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진족 기병의 힘은 막강 그 자체였습니다

 


이에 많은 수의 일본군이 피해를 보았고, 가토는 여진족 전체도 아닌 그 일부 중의 일부인 노토 부락도 점령하지 못한 채 조선으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등청정(가토 기요마사)이 마침내 군사를 인솔하여 두만강을 건너 깊숙이 노토 부락까지 들어가 성을 공격하니 호인(오랑캐->여진족)이 사방에서 일어나 요격하여 사졸들의 사상자가 많았다.
이에 진로를 바꾸어 종성의 문암을 경유하여 강을 건너 온성ㆍ경원ㆍ경흥에 차례로 들어갔다가 해변의 협로를 따라 경성으로 돌아왔다.
[선조수정실록]



피해는 여기서 그치지 않아 노토 부락의 여진족이 복수를 위해 함경도를 공격하여 민가를 약탈하는 피해를 입힙니다.

가토는 괜히 벌집만 건드린 꼴이 되어버린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가토에게 함경도의 일부 지역 통치를 위임받은 국경인과 국세필, 정말수 등은 이전에 임해군과 순화군이 그랬던 것처럼 백성들에게 억압과 폭정을 저지르고 있었으니 함경도 백성들은 여진족일본군, 그리고 국경인을 비롯한 순왜에게 삼중고를 겪게 되었습니다.

초토화된 마을(드라마 징비록 중에서)


함경도 백성들은 고통에 신음하며 일본군과 그들을 추종하는 세력을 물리치고 자신을 구원해줄 영웅을 기다리고 있었으나 때는 아직 이르지 않았습니다.
 


다음 시간에 영천성 전투에 대해 다루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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