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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임진왜란

[임진왜란38] 너희들은 포위됐다! 지례 전투

by 역사채우기 2021. 1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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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7일, 거창으로 향하던 일본군이 우척현(우두령)에서 김면이 이끄는 의병에게 패하였고, 전주로 향하던 일본군 역시 권율이 이끄는 관군에게 패하였습니다.

 

우척현 전투에 대해서는 아래 게시물을 참고해주세요.

https://historicalhistory.tistory.com/68

 

[임진왜란26] 영남 3대 의병장의 우척현 전투

| 일본 제6군의 전라도 공격 고니시 유키나가의 일본 제1군이 평안도로, 가토 기요마사의 일본 제2군이 함경도로 진출할 때 고바야카와 다카카게의 일본 제6군은 전라도 점령을 목표로 삼았

historicalhistory.tistory.com

 

 

이들은 모두 전라도로 진출에 실패하여 지례현(지금의 경북 김천시)으로 후퇴하였고, 2개 부대의 병력이 합쳐 1,500여 명이었습니다.


7월 29일, 지례로 후퇴한 일본군은 지례향교 창고에서 잠시 행군을 멈추고 휴식을 취했습니다.

하지만 그 정보는 의병 총대장 김면에게 곧바로 전달되었고, 이에 김면은 상도아장 황응남, 종아장 서예원을 지례로 파견하였습니다.

김면 장군 신도비(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지례로 내려간 황응남과 서예원은 의병대장 여대로, 권응성, 황간 의병장 박이룡, 영동 출신 의병장 한명윤, 회덕 출신 의병장 강절의 의병과 연합 작전을 세우니 그 규모가 1,500여 명이었습니다.
1500 vs 1500


의병 연합군은 깊은 휴식에 빠져들어 방비가 느슨해져 있던 일본군을 포위한 뒤 창고 담장 안에 장작을 쌓고는 불을 질렀습니다.

그러자 순식간에 창고는 불이 번져 일본군이 약탈했던 곡식과 재물은 물론이고, 일본군까지도 불에 타는 자가 속출했습니다.

불바다가 된 창고


이윽고 일본군은 어떻게든 살기 위해 너나 할 것 없이 빠져나오려 했으나 사방으로 포위한 의병을 뚫고 지나가기는 매우 어려웠고, 의병들이 쏘는 화살의 과녁이 될 뿐이었습니다.


이 전투로 일본군 1,500여 명은 거의 전사하였고, 일본군 10여 명이 필사적으로 탈출했으나 얼마 못 가서 의병들에게 잡혀 죽고 말았습니다.

숯덩이로 변한 창고



이렇게 의병 연합군은 지례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으나 아쉬운 점도 컸던 전투였습니다.

첫 번째로, 전투 도중 일본군에게 끌려온 부녀자까지 불에 타 죽는 사고가 발생했으며, 둘째로, 의병장 김면은 합천군수 배설에게 도망친 일본군을 추격하여 모두 섬멸하라고 지시했으나 배설이 이에 응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이유가 배설

 

'어찌 수령으로서 *백면서생의 지휘를 받으랴'

 

라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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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설(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중에서)

 

 

* 백면서생 : 오로지 글만 읽고 세상 물정에 어둡고 경험이 없는 사람

배설 : 관군이 의병의 지휘를 받을 순 없다

 

'나라가 위급한데 목숨을 바치지 않으면 어찌 성현의 글을 읽었다 하리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김면이 의병을 일으키며 했던 말)

 

 


이 일로 배설은 군율을 어긴 죄로 처벌을 받게 됩니다.



다음 시간에는 청주 전투에 대해 다루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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