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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임진왜란

[임진왜란34] 가토 기요마사의 함경도 진출을 막아라! 해정창 전투

by 역사채우기 2021. 1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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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군의 분할 진격과 조선 왕자들의 근왕병 모집

일본군은 조선의 수도 한양을 점령한 직후 고니시 유키나가의 제1군은 평안도로 진군하였고, 구로다 나가마사의 제3군은 황해도로 진출하여 1군을 지원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일본 제2군 가토 기요마사함경도로 진군하였고, 모리 요시나리의 제4군은 강원도로 진출하여 2군을 지원하도록 하였습니다. 

일본군의 한양 점령 이후 진군로



이에 조선 조정도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한 뒤 선조가 있는 조정이 일본군의 손에 넘어갈 것에 대비하여 조정을 둘로 나누어 광해군에게 분조를 이끌게 하였습니다.

여기에 *임해군을 함경도로, *순화군은 강원도로 보내 아직 적의 손에 넘어가지 않은 지역에서 근왕병을 모집하도록 하였습니다. 

* 임해군(이진) : 세자 광해군의 친형으로, 선조와 공빈 김씨 사이에서 태어난 왕자
* 순화군(이보) : 선조와 순빈 김씨 사이에서 태어난 왕자

 



| 가토 기요마사의 함경도 진출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강원도가 일본군 치하에 놓이게 되자 순화군은 이복형인 임해군이 있는 함경도피신했으며, 가토 기요마사의 군대는 큰 피해 없이 고달산, 노인재를 지나 영흥만까지 진출하였습니다.

 


한편, 부원수 신각과 함께 조선 육군의 첫 승리인 해유령 전투의 주역이었으며, 이를 방어해야할 함경도 남병사 이혼은 일본군의 예상 경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일본군이 너무나도 빠른 속도로 진격해오자 싸워보지도 못하고 가기 바빴습니다.

 

해유령 전투에 대해서는 아래 게시물을 참고해주세요.

https://historicalhistory.tistory.com/52

 

[임진왜란10] 조선 육군의 첫 승리! 해유령 전투

5월 2일, 도원수 김명원과 부원수 신각이 지키는 한강 방어선과 유도대장 이양원이 지키는 한양 도성은 겨우 소수의 군사가 헤엄쳐오는 것을 겁먹고 도망치면서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

historicalhistory.tistory.com

 

 

이에 함경남도 지역은 너무나도 쉽게 뚫리고 있었고, 임해군과 순화군은 함경북도 회령으로 피신하였습니다.

더이상 도망갈 곳도 없다.

 


가토 기요마사는 단천까지 진출한 뒤 부장 나베시마 나오시게에게 영흥과 함흥 지역을, 사가라 요리후사게 북청을, 구키 히로타카에게는 단천을 수비하도록 맡기고 자신은 본대를 이끌고 계속 북쪽으로 진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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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진(파란색)과 가토의 진군로(출처 : 국토정보플랫폼 국토정보맵)

 


그러자 함경도 북병사 한극함은 자신이 이끄는 *6진의 군사와 신임 함경도 남병사 이영의 군사와 힘을 합쳐 1천여 명의 군세로 마천령의 산세를 이용하여 일본군을 막으려 하였습니다.

 

* 6진 : 조선 세종 시기 김종서함경도 지역의 여진족을 토벌한 후 지역 방비를 위해 설치한 6개의 진으로 경흥, 경원, 회령, 종성, 경성, 부령이 있습니다.

* 임진왜란 초반, 훈련 한 번 제대로 받지 못한 오합지졸의 군사들이 일본군의 총과 칼에 힘없이 쓰러져 간 것과는 달리 한극함이 이끄는 6진의 군사들은 여진족과의 잦은 전투로 실전 경험이 풍부했고, 훈련 상태도 우수한 정예병이었습니다.

 



| 해정창 전투

하지만 가토의 군대는 이미 *마천령을 넘어오고 있었고, 7월 17일, 해정창(지금의 함경북도 김책시(성진시))에서 한극함이 기병을 이끌고 일본군을 공격하면서 전투가 시작되었습니다.

* 마천령 : 함경남도 단천시에서 함경북도 김책시로 넘어가는 산맥으로, 고도가 높아 구름과 맞닿은 것 같다 하여 마천령이라 불립니다.

 


전투 초반에는 선두에서 조선 기병이 일본군 선발대를 무찌르고, 뒤에서는 조선 습사수(궁병)가 활을 쏘며 일본군을 잘 압박하였으나, 이내 전열을 정비한 일본군이 열을 지어 교대로 조총 사격을 하며 반격해오자 조선군의 피해가 속출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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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기병과 일본 조총병의 전투(드라마 징비록 중에서)

 


결국, 전투의 주도권이 일본군에 넘어갔고, 전투 결과, 부령부사 원희를 포함한 300여 명의 병사가 전사는 피해를 당하면서 한극함은 군사를 재빨리 수습한 뒤 다음을 기약하고 퇴각하였습니다.

7월 18일 새벽, 짙은 안개가 끼어 시야가 제대로 관측되지 않는 상태에서 일본군이 함성을 지르며 기습해오자 당황한 조선군은 또다시 큰 피해를 입고, 한극함은 함경북도의 본영인 경성으로 퇴각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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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군을 무너뜨리고 계속 진군하는 일본군(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중에서)



이 전투의 패배로 조선은 함경남ㆍ북도의 병사들을 모두 잃으면서 거침없이 진군해오는 가토 기요마사의 군대가 함경도를 점령하는 일은 시간문제였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국경인의 반란에 대해 다루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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