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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임진왜란

[임진왜란43] 철저한 준비만이 살 길이다! 영원산성 전투

by 역사채우기 2021. 1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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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4군 선봉장 모리 요시나리의 군대는 강원도 점령을 목표로 하였고, 1592년 7월, 삼척, 정선, 영월, 평창을 차례로 점령한 후 원주로 향했습니다.

모리 요시나리


이에 원주 목사 김제갑은 군민 4천여 명과 함께 1달 치 군량을 갖고 원주의 영원산성에서 적을 막기로 하였습니다.

 

* 김제갑이 보유했던 군량은 이보다 훨씬 많았으나 이전에 삼도순변사 신립이 충주 탄금대에서 싸울 때 무기와 군량을 많이 지원해 준 일이 있었기 때문에 1달치 밖에 보유하지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충주 탄금대 전투에 대해서는 아래 게시물을 참고해주세요.

https://historicalhistory.tistory.com/49

 

[임진왜란7] 일본군 조총병과 조선 기마부대의 회전! 탄금대 전투

https://youtu.be/1jEAWJFhjrg | 충주 탄금대 전투 한편, 일본군 역시 조령이 천하의 요새인 것을 알고 있었기에 조령을 넘는 것을 두려워했으나 막상 정찰해보니 사람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아 크게 기뻐

historicalhistory.tistory.com

 


8월 23일, 일본군이 원주에 다다르자 김제갑은 부하 장수인 박종남에게 영원산성으로 오는 길목에 매복을 지시했으나 박종남은 명령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가 정탐하러 나온 일본군에게 기습을 당해 군사들을 잃고 돌아왔습니다.

 

마침내 모리 요시나리3천 명의 군사를 이끌고 영원산성 앞에 진을 쳤습니다.

영원산성은 가파른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치악산의 험한 지세를 따라 성을 축조했기 때문에 방어하기 유리한 지형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원주 영원산성(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군이 성을 공격해왔으나 군민들의 결사항전과 영원산성의 지형에 가로막혀 패퇴하였습니다.

그러자 조선군은 승리 후 일본군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 데다가 성의 험한 지세만 믿고 자만심에 빠져 주변 경계를 소홀히 하였습니다.

영원산성의 성벽(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8월 25일, 일본군은 성 주변의 방비가 느슨해진 기회를 틈타 소수의 병력을 보내 절벽을 기어올라 성곽을 점령한 후 전군을 보내 영원산성을 총공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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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런 기습에 방어선이 동시다발적으로 뚫리고 있었으나 김제갑은 전투를 독려하였고, 전투 도중 총에 맞고도 활을 쏘며 끝까지 싸웠습니다.

그러나 김제갑은 일본군에 저격을 당해 전사하였고, 함께 참전했던 김제갑의 아들 김시백 역시 총에 맞고 아버지를 따라 숨을 거두게 됩니다. 

 


아래는 [선조수정실록]에 수록된 영원산성 전투에 대한 내용입니다.

적병이 원주 영원 산성을 함락시켰는데, 목사 김제갑이 전사하였다.
이에 앞서 관동의 주현이 모두 적에게 노략질을 당하였으나 원주만은 온전하였다.

적이 이미 원호의 군사를 패배시키고 드디어 곧바로 원주로 침입하니, 원주 목사 김제갑이 고을 안의 사대부와 서민 그리고 온 가족을 데리고 산성으로 들어갔는데 험한 지세만 믿고 설비를 하지 않았다.
적이 두세 번 성 밖까지 왔다가 되돌아가므로 성 안의 사람들은 더욱 그들을 얕잡아보았다.
하루는 적이 잠깐 퇴각하는 체하다가 곧바로 군사를 돌려 허점을 틈타 습격하였으므로 성이 금방 함락되었다.

김제갑은 굴하지 않고 전사하였는데, 처자도 모두 따라 죽었으므로 사람들이 한 가문에 충ㆍ효ㆍ열(忠孝烈)이 나왔다고 하였다.
왜적이 드디어 원주에 주둔하고 군영을 지평현(양평)까지 연결하여 경성(서울)에 이르는 길을 확보하였다.

 


이렇게 영원산성은 일본군에 점령당하고 말았고, 남편과 아들의 전사 소식을 들은 김제갑의 아내는 자살하였습니다.

같은 해 11월, 선조는 김제갑에게 영원산성에서 분전한 공으로 자헌대부(정2품)와 이조판서의 직위를 추증하였고, 이후 원주 충렬사에 배향되었습니다.

김제갑 충렬비(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다음 시간에는 적의 본진 공략에 나서는 조선 수군에 대해 다루겠습니다.
더 알고 싶으신 부분이 있으면 댓글 남겨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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