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일, 조헌의 의병, 청주 방어사 이옥과 공주 목사 허욱의 관군, 그리고 영규의 승병이 연합하여 청주성을 탈환하였습니다.
청주성 전투에 대해서는 아래 게시물을 참고해주세요.
https://historicalhistory.tistory.com/81
| 모두가 반대해도 나는 갈 것이다!
이후 조헌은 기세를 몰아 원래의 목표였던 금산을 탈환하려 했고, 군사를 지원받기 위해 충청도 순찰사 윤선각(윤국형), 광주목사에서 전라도 관찰사로 승진한 권율, 의병장(홍의장군) 곽재우 등에게 백방으로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윤선각=용인전투, 권율=이치 전투, 곽재우=정암진 전투
하지만 모두에게 지원을 거절당한 조헌은 8월 16일, 자신이 이끄는 의병으로만 금산 탈환에 나서기로 합니다.
그러자 청주성 전투에서 같이 싸웠던 공주 목사 허욱이 무모하다며 기일을 정해 관군과 합동작전을 펼치자며 만류했으나 조헌은 이를 무시했고, 별장 이산겸 또한
"왜군은 정예대군이므로 오합지졸로는 대적할 수 없다"
라고 말하며 출정에 반대하였습니다.
이에 조헌은
"국왕(선조)이 당하는 판국에 신하가 어찌 목숨을 아끼겠는가"
라고 말하면서 출정을 강행하였습니다.
그러나 충청도 순찰사 윤선각이 출정을 방해하기 위해 조헌이 이끄는 의병의 부모와 처자식을 잡아 가두니 상황은 더욱 악화되어 1천여 명이었던 의병은 계속 줄어들어 700여 명만이 남았고, 이들은 끝까지 남아 조헌과 함께 싸우기를 청했습니다.
8월 18일 새벽, 청주성 전투에서 함께 분전한 영규와 승병 800여 명이 조헌의 의병에 합류하면서 총 병력 1,500여 명은 금산성에서 10리 떨어진 곳에 진을 쳤습니다.
이윽고 고바야카와 다카카게가 이끄는 일본 제6군은 정탐병을 보내 조선군의 진을 둘러보고 주변에 1,500여 명 외에는 별다른 군대가 없음을 알아차렸습니다.
| 제2차 금산 전투
이후 일본군은 우선, 퇴로를 차단하여 조선군이 도망가지 못하게 막고, 병력의 우세함을 앞세워 군사를 나누어 교대로 공격하였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조헌은
"한 번의 죽음이 있을 뿐 '의(義)'에 부끄럼이 없게 하라"
라고 명령하고는 싸움에 임하였습니다.
* 의병의 한자가 義兵이니 본인의 본분을 잘 지키라는 의미에서 한 말입니다.
그렇게 시작된 일본군의 거센 공격을 조선군은 3차례나 잘 방어하였으나 화살이 다 떨어지자 결국 일본군에 유리한 단병접전에 돌입하게 됩니다.
조헌은 위급하니 몸을 피하라는 주변 사람들의 만류에도 오히려 북을 치며 사기를 북돋웠으나 이내 진은 무너지고 말았고 남은 의병들이 영규의 진으로 퇴각하였습니다.
이때 영규에게도 다음을 기약하고 도망칠 것을 권유했으나 영규 역시 이를 뿌리치고 끝까지 싸우다 조헌과 함께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지휘부는 모두 전사하였고, 남은 의병과 승병들도 적에게 완전히 포위된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한 명도 도망치지 않고 끝까지 싸우다 모두 장렬히 전사했습니다.
또한, 조선군은 앞선 1차 금산 전투에 이어 2차 전투에서도 패하며 금산성 수복은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1차 금산 전투에 대해서는 아래 게시물을 참고해주세요.
https://historicalhistory.tistory.com/65
제2차 금산 전투 이후 조헌의 동생 조범이 조헌의 시체를 수습하였으며, 조헌의 제자인 박정량과 전승업이 700명의 유골을 모아 장례를 치르니 후세에 이를 '칠백의총'이라 불렀습니다.
일설에는 '700의총'이 조선시대의 *숭유억불 정책에 따라 조헌의 의병 수만 따온 것이므로 영규의 승병도 포함하여 '1500의총'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 숭유억불 정책 :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탄압하는 정책
1604년, 제2차 금산 전투의 주역인 조헌은 선무원종공신 1등으로 책록되었고, 1734년에는 영의정에 추증되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영원산성 전투에 대해 다루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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