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임진왜란

[임진왜란44] 이제 남은 건 부산뿐이다! 적의 본진으로 진격하는 조선수군

by 역사채우기 2021. 12. 5.
반응형

1592년 8월, 일본군은 수도 한양에 주둔 중인 부대와 북상해있던 부대 일부가 김해와 부산, 이렇게 경상도 지방으로 남하하였습니다.

이를 알게 된 경상도 순찰사 김수는 조선 조정에

"위로 침범한 적도들이 낮에는 숨고 밤에 행군하여 양산, 김해강 등지로 잇달아 내려오는데, 짐짝을 가득 실은 것으로 보아 도망치는 낌새가 현저합니다"

라는 장계를 올렸습니다.

경상감사 김수(드라마 징비록 중에서)

 

이에 조정에서는 전라좌수사 이순신에게 적의 본진인 부산 공격을 요청하였습니다.

 


사실 일본군 부대가 남하한 이유는 전라도 공격에 애를 먹고 있던 일본 제6군(고바야카와 다카카게의 부대)을 지원하는 한편, 경상도에서 전라도로 진입하는 통로인 진주성을 공격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경상도에서 전라도로 들어가는 관문 진주성



그동안 일본군이 전라도 진출에 여러 번 고배를 마셨지만 그래도 전라도는 조선이나 일본이나 어떻게든 확보해야 하는 중요한 요충지였으며, 경상도 순찰사 김수는 일본군의 이러한 전략을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일본군의 전라도 공격에 대해서는 아래 링크를 참고해주세요.

https://historicalhistory.tistory.com/category/%EC%9E%84%EC%A7%84%EC%99%9C%EB%9E%80/%EC%9D%BC%EB%B3%B8%EA%B5%B0%EC%9D%98%20%EC%A0%84%EB%9D%BC%EB%8F%84%20%EA%B3%B5%EA%B2%A9?page=2

 

'임진왜란/일본군의 전라도 공격' 카테고리의 글 목록 (2 Page)

한국의 전쟁사를 주로 다루는 블로그입니다.

historicalhistory.tistory.com




그렇지만 이순신은 그 이전부터 전라우수군과 1달 가까이 합동훈련을 실시하여 수준 높은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었고, 그동안의 해전을 통해 부산을 제외한 남해안의 제해권을 장악하고 있었으므로 다음에 있을 부산 공격을 치밀하게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김수와 조선 조정의 요청을 수락할 수 있었습니다.
원래도 강력한 조선 수군이 훈련에 박차를 가한다면..


8월 24일, 전라좌수사 이순신은 전라우수사 이억기와 함께 출정하였고(이순신의 4차 출정), 다음 날에 경상우수사 원균과 합류하여 다시 한번 연합 함대를 결성하였으며, 그 규모만 해도 판옥선 74척, 협선 92척을 포함하여 총 170여 척에 달하는 대함대를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부산포로 진격하는 조선수군 연합함대(드라마 불멸의이순신 중에서)



8월 27일, 조선 수군은 부산으로 진격하기에 앞서 매복 가능성이 있는 길목을 철저히 수색하였습니다.

 

이때 창원의 어부 정말석이라는 사람이 인근에 있는 일본 수군의 동태를 알려주었습니다.

조선 수군은 어부의 보고를 토대로 인근을 샅샅이 뒤져 곳곳에 산재해 있는 일본군 소탕에 나섰습니다.

 


8월 29일, 조선 수군은 낙동강 하구의 장림포 앞바다에서 적선 6척을 발견하였고, 일본군이 조선군을 보자마자 배를 버리고 뭍으로 도망치니 조선 수군은 이 배를 모두 격침시켰습니다. (장림포해전)

반응형

부산박물관에 전시되어있는 부산포해전 모형



9월 1일 새벽, 부산포로 진격하던 조선 수군은 화준구미에서 적선 5척을 격침시켰으며, 다대포에서 8척서평포에서 9척절영도에서 2척, 초량목에서 4척을 격침시켰습니다.

이순신의 4차 출정 지도



이로써 조선 수군은 부산포에 돌입하기도 전에 적선 총 34척을 격침시키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장림포, 화준구미, 다대포, 서평포, 절영도, 초량목 해전의 전과>



이렇게 소규모 전투에서 여러 차례 승리하며 사기를 드높인 조선 수군은 드디어 부산포에 진입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를 기다리는 건 8천여 명의 군사와 470여 척의 함선이었습니다.
(불멸의 이순신 부산포 진입하는 장면)

 


다음 시간에 부산포 해전에 대해 다루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