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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되는 앱테크의 기준 요즘 여러분들의 통장은 안녕하신가요? 요즘 물가는 우크라이나 전쟁, 기후 변화로 인한 곡물 가격 상승, 달러 강세로 인한 환율 상승 등의 이유로 지칠 줄 모르고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는데, 현재 물가상승률에 비해 우리가 받는 월급은 그에 미치지 못한 분들이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전세계적인 인플레이션 현상(화폐 가치 하락, 물가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eral reverse system)에서는 몇 차례나 금리 인상을 실시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에 따라 작년, 코스피 3천을 넘기며 고공상승했던 주식 시장도 연일 하락하고 있으며, 앞으로의 상황은 더욱 악화일로를 걷게 될 거라는 전망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변동가능성이 높고 위험한 투자 방법보다는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몇 번.. 2022. 10. 4.
돈은 왜 돈일까? https://youtu.be/k64eV-6YYu0 돈은 왜 돈일까? 현대 사회에서 돈은 없으면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필수적인 유통수단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돈을 '돈'으로 부르고 있을까요? 이 유래에 대해서는 정확히 밝혀진 바 없으나 지금으로부터 몇천 년 전, 신석기 시대 때 물물교환을 위해 쓰인 '돌돈'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이 밖에도 사회에서 돌고 도는 특징 때문에 '돈'이라 불린다는 설과 중국 *춘추전국시대 때 사용되던 화폐인 명도전(明刀錢)의 칼 도(刀) 자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 춘추전국시대 : 기원전 770년, 주나라의 천도 시점 부터 기원전 221년, 진나라의 시황제(진시황)가 중국을 통일할 때까지의 시기 그리고, 고조선의 8조법 중에서도 도둑질한 자가.. 2022. 10. 3.
조선은 왜 조선일까? | 고조선은 왜 고조선일까? [삼국유사]와 [동국통감]에 따르면 기원전 2333년, 환웅과 웅녀의 아들이자 하늘에 대한 제사와 정치를 주관한 단군왕검은 나라를 세운 뒤 수도를 아사달로 정하고 국호를 조선이라 하였습니다. 여기서 조선은 '태양이 뜨는 자리'라는 뜻을 가진 고유어 아사달을 한자로 표현했다는 설과 강 이름과 연관되었다는 설, 그리고 만주어로 관할 구역을 뜻하는 '주신(珠申)'이 조선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이후 기원전 194년에 위만조선이 세워지자 이를 구분하기 위해 [삼국유사]를 집필한 일연은 단군이 세운 조선을 고조선으로 기록하였습니다. 그러나 훗날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면서 현대에는 이성계의 조선과 단군조선을 구분하기 위해 단군조선을 고조선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성계는.. 2022. 10. 2.
부여와 가야 국호의 유래 | 가야는 왜 가야일까? 가야는 고구려, 백제, 신라로 대표되는 삼국의 사이에서 약 500년간 존속했던 나라입니다. 그렇다면 가야는 왜 '가야'라고 부르고 있을까요? 이에 대해 아직까지 확실한 근거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몇 가지 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우선, 가야가 존속했을 당시에는 가야 외에도 가라, 가락, 임나 등으로 기록되어 있어 초기의 신라와 비슷하게 하나의 국호로 통일되어 불리지는 않았습니다. 한 예로, 고구려 광개토태왕이 신라를 침입한 가야와 왜군을 공격하여 임나가라의 종발성에 이르렀다는 기사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가야'라는 단어의 유래에 대해서는 조선 후기 실학자 정약용의 저서에는 끝이 뾰족한 고깔을 쓰는 사람이라는 뜻의 '가나'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했고, 이외에도 고구려와 비슷.. 2022. 10. 1.
고구려와 백제, 신라 국호의 유래 우리나라의 삼국시대로 대표되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국호는 각각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까요? | 고구려는 왜 고구려일까? 먼저, 고구려부터 살펴보겠습니다. 고려시대 때 김부식이 편찬한 [삼국사기]에 따르면 '고구려'라는 국호는 고대 언어에서 쓰이던 '구려'에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의 성씨인 '고'자를 붙여서 생겨났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구려'는 무엇이고, 주몽은 왜 자신의 성씨를 고씨로 하였을까요? '구려'는 고대 언어에서 '위대하다', '성스럽다'라는 뜻이 있었고, '高'자는 크고 높음을 의미하는 한자어였으므로 주몽이 강건한 나라를 만들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고구려는 '위대하고 신성한 나라', '높고 큰 나라'라는 의미를 지닌 나라였습니다. 그러던 고구려는 20대 .. 2022. 9. 29.
발해의 역사가 사라진 이유 https://youtu.be/HnaulND7QVE 과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나라로는 고구려,백제, 신라, 발해, 고려, 조선이 있습니다. 이 중에서 발해를 제외한 나라들은 모두 그 나라의 역사서가 현존하고 있고, 과거 조상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알 수 있게 해줍니다. 하지만 발해의 역사서는 전해지지 않고 미스테리에 빠져있습니다. 해동성국이라 불릴 만큼 강성했고, 찬란한 문화를 가졌던 발해가 역사서가 전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번째는, 거란군의 초토화 작전으로 인한 역사서의 소실입니다. 발해는 926년, 야율아보기가 이끄는 거란군의 침공으로 멸망하였습니다. 거란은 발해를 멸망시킨 후 발해 부흥의 불씨를 없애기 위해 그 근간이라 할 수 있는 역사서를 불태워버렸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럼에도 정안국, .. 2022. 9. 27.
[임진왜란117] 임진왜란이 조선, 명나라, 일본에 끼친 영향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헛된 망상으로 1592년부터 시작된 임진왜란은 1598년, 남해왜성 소탕전을 끝으로 7년간에 걸친 전쟁이 종결되었습니다. | 임진왜란이 조선에 끼친 영향 그리고 조선은 명나라의 도움을 받아 일본을 조선 땅에서 완전히 몰아내는 데에는 성공했으나 전쟁을 치렀던 장소가 조선 땅이었기 때문에 조선, 명나라, 일본 중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선, 여러 전투를 치르면서 군인과 의병이 많이 죽어 국방력이 감소했고, 오랜 전란으로 인한 국토 황폐화, 경작지 감소, 이에 따른 기근과 전염병 발생, 거기다 전공을 세우기 위해 혈안이 된 일본군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코와 귀를 베어 본국으로 보내면서 수많은 백성이 죽어갔습니다. 일례로, 당시 관료였던 이산해가 쓴 시인 [노방원]에는.. 2022. 9. 25.
[임진왜란116] 임진왜란 최후의 전투! 남해왜성 소탕전 노량해전에서 관음포에 갇힌 일본군 일부는 남해도에 상륙한 뒤 남해 선소왜성으로 향했습니다. 이곳은 고니시 유키나가의 사위인 소오 요시토시가 수비병 1천 명과 함께 주둔했던 곳이었고, 여기에는 소오 요시토시와 시마즈 요시히로의 부장 키이레 세주노카미, 카바야마 쿠다카 등 1천여 명이 남아있었습니다. 이들은 급히 뗏목을 만들어 창선도로 탈출하기 위해 병력을 실어 나르고 있었는데 갑자기 포구에서 굉음이 울려 퍼졌습니다. 조명 연합수군이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노량에서 대승을 거둔 조명 연합수군은 남해도에 적이 상륙했을 것으로 판단하고 경상우수사 이순신(충무공 이순신과는 동명이인)과 명나라 수군 도독 진린의 지휘 아래 남해도를 포위한 후 수색하였습니다. 이들은 남해도 곳곳에 일본군이 버리고 간 배를 모두 불태웠고.. 2022. 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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