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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임진왜란

[임진왜란61] 행주대첩(2) 병력의 열세를 화력으로 극복하라!

by 역사채우기 2022. 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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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은 평양에서 한양으로 남하하는 명나라군을 벽제관에서 물리친 후 남쪽에서 한양으로 북상하던 조선군을 공격하기 위해 3만여 명의 병력을 7진으로 나누어 행주산성으로 진군하였습니다.

행주산성 덕양정의 사진



당시 행주산성에는 전라도 순찰사 권율이 이끄는 관군, 김천일의 의병, 처영의 승병을 합하여 3천여 명이 성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1593년 2월 12일, 묘시(오전 5시~7시)에 1군 선봉장 고니시 유키나가의 부대가 1진을 맡아 성으로 접근하였습니다.

고니시 유키나가



일본군이 몰려오자 조선군은 조총의 사정거리가 닿지 않는 곳에서 활을 쏘고, 변이중 화차와 신기전, 비격진천뢰와 석포까지 쏘아대니 고니시는 성벽에 접근도 못한 채 막대한 피해를 입고 물러났습니다.

1진이 후퇴하자 일본군은 2진을 맡은 이시다 미츠나리가 군대를 이끌고 행주산성으로 달려들었으나 공성 장비도 없이 보병 중심으로 무작정 돌격을 강행했기 때문에 조선군의 강력한 화력에 피해만 입고 후퇴하였습니다.

이시다 미츠나리



2진까지 후퇴하자 3진의 구로다 나가마사가 누각을 만들어 그 위에 조총병을 배치한 후 성을 공격하려 했으나 조방장 조경이 이순신 장군이 보내준 천자총통을 발사하여 깨뜨리면서 성을 공격하기 어려워지자 구로다도 후퇴하였습니다.

행주산성은 사진처럼 높지 않았으니 행주대첩에서의 공성탑도 높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는 일본군이 병력에 있어서는 절대 우위에 있었으나 조선군이 다양한 최신식 화약 무기로 무장하고 있었고, 방비도 철저히 하였기 때문에 일본군의 전술이 전혀 먹혀들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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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주산성에서 방어하는 조선군(드라마 징비록 중에서)



한편, 일본군의 총대장이자 4진을 맡은 우키타 히데이에는 멀리서 1, 2, 3진이 연이어 무너지는 광경을 지켜보면서 대노하였고, 곧바로 군을 이끌고 자신이 직접 선봉에 서서 진군하였습니다.

우키타 히데이에



그는 앞서 독산성에서도 권율에게 패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지난 패배를 설욕할 마음으로 불타있었고, 앞선 부대가 줄줄이 무너지면서 군의 사기가 떨어졌으니 자신이 총대장으로서 전장을 진두지휘하여 사기를 끌어 올리고 싶었을 것입니다.

이윽고 우키타 히데이에가 대군을 이끌고 몰려오자 조선군이 우수한 화력을 바탕으로 최선을 다해 방어하였으나 계속해서 밀려드는 적을 막아내지 못하고 성의 외성이 함락되었습니다.

행주산성의 외성(출처 : 문화재청)

 


조선군은 내성인 석성으로 후퇴하여 진을 정비했으나 전황이 점점 수세에 몰려 병사들이 하나둘씩 동요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대로 간다면 성이 함락되는 건 시간문제였고, 성의 남쪽은 한강이 흐르고 있어 도망칠 수도 없었기 때문에 모두가 죽음을 맞이해야 할 수도 있는 긴박한 상황이었습니다.

행주산성 인근의 지도(출처 : 국토정보플랫폼 국토정보맵)



이때 권율이 전장을 돌면서 병사들을 독려하여 사기를 진작시켰고, 적장에게 모든 화력을 집중시키도록 지시하였습니다.

권율 장군 영정



우키타는 직접 선두에 나서서 군을 지휘했으므로 공격받기 좋은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자신에게 날아드는 포탄과 화살을 모두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우키타는 이 공격으로 치명상을 입고 죽기 직전까지 다다랐으나 부하들이 우키타를 업고 도망치면서 목숨만 겨우 건졌습니다.

이렇게 총대장이 전장을 이탈하면서 2진의 이시다 미츠나리가 남은 군사들을 계속 지휘했으나 그 역시 부상을 당하면서 군대를 뒤로 물렸습니다. 

 



이렇게 4진까지 후퇴하자 5진의 깃카와 히로이에가 화공으로 성을 공격하였고, 성벽에 어느 정도 불길이 일었으나 성 내에 많은 물을 저장해두었기 때문에 불이 크게 번지지 않아 진화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이는 권율이 독산성에 있을 때 마실 물조차 부족했기 때문에 그 경험을 살려 전투 전에 미리 물을 많이 준비해두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전시에 물은 식량보다 더 중요합니다.



이렇게 일본군의 화공은 실패했고, 깃카와는 공격을 지속했으나 그 역시 돌과 화살에 맞아 부상을 당하면서 후퇴하였습니다.

그러자 지금껏 방어만 하던 조선군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후퇴하는 일본군에게 반격을 가하여 적지 않은 타격을 입혔습니다. 

 

 

이렇게 조선군은 1진부터 5진까지의 계속된 공격을 잘 막아내고 있었고, 이어서 6진의 모리 히데모토가 군을 이끌고 접근해오고 있었습니다.

모리 히데모토




다음 시간에 행주대첩에 대해 이어서 다루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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